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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만에 되살린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 일대기

송고시간2016-10-02 10:00

열화당, 1960년 한글학회가 펴낸 전기 재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오늘날 국어 문법의 기틀을 놓은 한힌샘 주시경(1876∼1914) 선생의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의 전기가 재출간됐다.

주시경의 제자인 국어학자 김윤경(1894∼1969) 선생이 기록해 1960년 한글학회가 소책자 형태로 출간한 전기를 다시 펴낸 것이다. 주시경의 짧고 굵은 생애를 압축적으로 담았다.

주시경이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던 열일곱 살 때 일이다. 그는 한문을 우리말로 옮겨가며 해석하던 중 '글은 말을 적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에 이른다. 평생 우리 말글 연구에 투신하게 된 계기다.

주시경 선생 [연합뉴스 자료사진]
주시경 선생 [연합뉴스 자료사진]

열아홉 살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수학·지리·역사 등 신학문을 배운 주시경은 서재필과 함께 독립신문 간행을 주도했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이후에도 여러 학교에서 영어·일본어·중국어부터 항해술·측량술·의학에 이르기까지 각종 근대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그가 1896년 독립신문 사내에 조직한 '국문동식회'는 맞춤법 통일 운동의 전초기지가 됐다. 1907년 한글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국가기관인 '국문연구소'는 국어 연구와 사전 편찬 필요성에 대한 그의 상소로 설치됐다고 한다. 주시경은 국문연구소 전임위원으로 일하며 풀어쓰기와 '모든 닿소리(자음) 글자가 받침으로 쓰일 수 있다'는 한글 맞춤법의 중요한 원리를 주창했다.

국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모든 형태소를 철저히 분해하는 분석주의를 내세웠다. 분석주의는 명사·동사·형용사 등 실사(實辭)에 더해 문법적 기능이 강한 조사·어미 등 허사(虛辭)도 독립된 낱말로 보는 견해다.

오늘날 국어 문법체계는 허사 가운데 조사까지만 낱말로 인정하는 절충주의다. 여기에는 해방 이후 국어 교과서 편찬에 주도적 역할을 한 주시경의 제자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절충주의는 실질적 의미를 가지는 어간에 조사나 어미를 붙여 뜻을 만드는 교착어인 국어 문법 해석에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김정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 책의 꼬리말에 "절충주의 말본(문법)의 잘못을 고치고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서는 주시경이 일으키고 김두봉과 김윤경이 계승한 것으로 끝난 분석주의 말본을 되살리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썼다.

열화당. 55쪽. 1만4천원.

56년만에 되살린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 일대기 - 2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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