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글 깨우치니 영감은 치매에" 늦깎이 학생들 감동의 시화전

"받아쓰기 20점, 그래도 행복"…"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뭐하러" 회한도
충주 비정규학교 '문해 한마당' 60∼80대 노인들 작품 60점 출품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5년째 치매로 누워 있는 영감에게 편지를 써서 읽어준다 / 나에게 한글 가르쳐 주던 영감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칭찬해 줄 텐데……"

치매로 누운 남편을 위한 시화
치매로 누운 남편을 위한 시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에 가지 못해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 뒤늦게 글을 깨우친 어르신들이 직접 쓴 글에 담긴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1일 충주시에 따르면 시가 최근 개최한 '제1회 문해(文解) 한마당' 행사에는 시화(詩畵) 60여 점이 출품됐다.

문해 한마당은 충주 지역 6개 비정규학교 학생들의 화합을 위해 올해 처음 마련한 행사다. 학생들은 한창 배울 나이에 끼니조차 잇기 힘든 형편 때문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60∼80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충주열린학교 안병순(76·여) 씨 작품에는 치매에 걸려 누워 있는 남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배어 있다.

안 씨는 "글을 몰랐을 때는 안경을 안 가져 왔다고 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리모컨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고 "지금은 5년째 치매로 누워 있는 영감에게 편지도 써서 읽어준다 / 한글 가르쳐주던 영감이 지금 공부하는 것을 보면 칭찬해 줄 텐데 / 중학교 졸업장 받으면 벌떡 일어나 안아줄 텐데"라고 적었다.

홍종예 씨도 늦깎이 공부를 한마음으로 성원하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글과 그림에 담아냈다.

"난 아직 창피한데 신문 읽는 마누라 신기하다는 남편 / 난 아직도 비밀인데 슬그머니 신발이며 가방이며 사다 놓는 큰며느리 / 난 아직도 부족하고 글을 몰라 부끄러운데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큰 아들 /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막도 읽고 영어도 배우는 지금 난 행복하다"

글을 배우는 어려움과 보람을 느낀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다.

충주늘푸른학교 최봉례 씨는 "너무나 답답해서 한글을 배우러 왔다 / 배우려니 힘들었다 / 참고 배웠다"고 돌아본 뒤 "배우고 나니 간판을 읽을 수 있었다 / 딸 이름도 썼다 / 아들딸이 놀라며 기뻐했다 / 글씨를 알고 나니 세상이 환해 보였다"고 했다.

깊은 회한과 함께 해학이 묻어나는 작품도 시선을 붙잡는다.

"내년에 죽을지 후년에 죽을지 / 얼마 있으면 죽을 걸 이걸 왜 하나 / 해서 뭐 하나 / 작년에 쓴 아들 편지 글자도 안 되고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 올해는 글쎄 / 큰아들은 간판을 일러주는데 작은아들은 그거 알아서 뭐해요, 요지랄을 한다 / 자식도 똑같은 자식이 아니네"(이종문)

너무나 힘들어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를 악물고 뚜벅뚜벅 배움의 길을 걷는 마음도 엿볼 수 있다.

권영분 씨는 "받아쓰기를 했다 / 20점 받았다 / 그래도 좋다 / 전에는 한 글자도 못 썼다 / 요 정도만 해도 행복하다 /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공부 / 많이 틀려도 마음은 괜찮다"고 했다.

k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0/01 09:01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AD(광고)
광고
AD(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