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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맞는 로마 첫 여성시장…겹악재에 '시련의 계절'

송고시간2016-09-25 07:30

행정 혼란 속 시민불편도 가중…'올림픽 유치 반대' 과정서 이미지 타격

차세대 주자로 약진한 토리노 여성시장과 대비


행정 혼란 속 시민불편도 가중…'올림픽 유치 반대' 과정서 이미지 타격
차세대 주자로 약진한 토리노 여성시장과 대비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3개월 전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38) 로마 시장.

변호사 출신으로 7살 아들을 둔 주부이기도 한 라지 시장은 지난 6월 기성 정당과 부패 정치인에 대한 불신으로 반사 이익을 본데다 거대 정치 담론이 아닌 쓰레기 문제 해결, 대중 교통 시스템 개선 등의 생활 밀착형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며 예상치 못한 압승을 거뒀다.

선거 이전까지는 철저히 무명에 불과했지만 일약 코미디언 출신의 베페 그릴로가 2009년 창설한 정당 오성운동의 간판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일개 지방 정당에 불과했던 제1야당 오성운동은 수도 로마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2018년 총선에서 집권당이 되겠다는 꿈까지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설적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 이래 2천500년의 로마 역사상 여성 최초로 '로마의 1인자'가 되는 영예를 안은 그가 취임 100일을 앞두고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변화를 향한 단합된 의지로 새로운 로마를 만들자"는 취임 일성과는 달리 아직까지 로마시정을 이끌 지도부 구성조차 제대로 완료하지 못하며 로마의 도시 행정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이달 초 시청 주요 인사 5명이 고임금 논란, 조직 간 알력, 공직 부적합 등 다양한 이유로 하루 새 줄사퇴하며 로마시의 인사 난맥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제대로 인사 검증을 못한 책임은 고스란히 라지 시장에게 돌아왔다.

이런 혼란 속에 쓰레기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쌓여 있고,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등 도시의 고질적인 현안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라지 시장은 자신이 임명한 파올라 무라로 환경국장이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 게 들통이 나며 시민들을 기만했다는 비난에도 직면했다.

그는 게다가 지난 21일 2024년 로마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공식적인 반대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이며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올림픽 반대 회견을 하는 라지 로마 시장 [AP=연합뉴스]
올림픽 반대 회견을 하는 라지 로마 시장 [AP=연합뉴스]

라지 시장은 올림픽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직전 조반니 말라고 이탈리아올림픽위원회(CONI) 위원장과 만나 최종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으나, 점심을 먹느라 전화 한 통 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사실이 드러나며 무례함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말라고 위원장은 35분가량 라지 시장을 기다리다가 그냥 갔고, 라지 시장은 식사를 끝낸 후 곧바로 기자회견장으로 향한 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면담에 응하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라지 시장이 일행 2명과 함께 방문한 테르미니 역 근처의 식당 주인을 인용해 "라지 시장이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일행과 담소하며 여유있게 식사를 즐겼다"고 보도해 그를 머쓱하게 했다.

라지 시장이 "1960년 올림픽 때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는 로마 시민에 토건업자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올림픽을 또 유치해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논리로 올림픽 유치에 반대한 것은 찬반 논란이 엇갈리고 있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탈리아인 58%가 올림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가 시민의 의견을 청취하는 단 한 번의 공청회도 없이 의사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시장(왼쪽)과 키아라 아펜디노 토리노 시장 [AP=연합뉴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시장(왼쪽)과 키아라 아펜디노 토리노 시장 [AP=연합뉴스]

라지 시장이 고전하고 있는 틈에 역시 오성운동 소속으로 이탈리아 제4의 도시인 토리노 시장으로 당선되며 파란을 일으킨 키아라 아펜디노(31) 시장은 안정적으로 시정을 이끌며 오성운동의 차기 대표 여성 주자로 발돋움한 분위기다.

일간 라 스탐파가 로마와 토리노 시민을 대상으로 각각 라지 시장과 아펜디노 시장의 호감도와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아펜디노 시장은 인간적 호감도에서는 56%대 42%로, 시정 지지율에서는 64%대 45%로 라지 시장에 크게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로마 시민들의 의견은 "새로운 시장 들어 로마가 더 큰 혼란에 빠졌다"는 쪽과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라지 시장에게 시간을 좀 더 줄 필요가 있다"는 편으로 갈리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로마의 30대 자영업자 조르지오는 "오성운동이 중앙 행정 경험이 없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원래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초반 시행착오가 생각보다 더 크다"며 "혼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지방 선거에서 라지 시장에게 표를 줬다고 밝힌 20대 후반의 택시 기사 안젤로는 "여성인데다 나이도 젊은 라지 시장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참신하게 로마를 바꿔나갈 줄 알았는데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도 큰 게 사실"이라면서도 "아직 3개월밖에 안 지난 만큼 최종 판단은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토리노에서 대학 교수로 일하는 50대 초반의 마리아는 "로마는 과거 10여 년 동안 시정이 엉망 상태로 유지돼 누가 새로운 시장이 되더라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반면 토리노는 북부의 부유한 도시답게 시스템이 안정돼 있다"며 "시장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도시를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RAI 여론조사에 따르면 라지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성운동에 표를 던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무 지지도에서 10점 만점에 6.8을 기록, 합격선인 6점을 넘겼다. 반면, 전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는 직무 지지도가 5.9점에 그쳐 합격선을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 [EPA=연합뉴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 [EPA=연합뉴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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