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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재생 동참한 공대 출신 플로리스트 손은정씨

송고시간2016-09-25 08:15

"예뻐서 꽃이 좋은 게 아녜요. 잘 시드는 게 대견하죠"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보기만 해도 무거운 1940년대 진공관 라디오와 그 앞에 기댄 듯 놓인 손바닥만 한 아이팟.

그 밑으로는 70∼80년대 백색가전부터 오늘날 IT기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전자제품들이 각기 다른 자태를 뽐내며 놓여 있다. 이질적인 이들의 조합을 축하하듯 서로의 빈틈마다 꽃들이 들어찼다.

서울 중구 세운상가에서는 21일부터 28일까지 '꽃, 시간의 강을 건너 시간과 만나다'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세운상가 재생 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 중 세운상가 활성화 부문의 예비사업으로서 첫선을 보이는 전시회다.

세운상가 재생 동참한 공대 출신 플로리스트 손은정씨 - 1

작가인 손은정(39)씨는 25일 "기술이 피어나고 지는 과정의 반복을 꽃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며 "수십년간 가전제품을 다루는 기술자들이 모였던 세운상가가 새로운 시간을 만나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고 말했다.

지인들은 구형 모니터와 텔레비전, 세탁기 등을 기꺼이 내놨다.

손씨는 플로리스트로서는 보기 드물게 엔지니어 출신이다.

대학에서 컴퓨터과학과 산업공학을 전공한 손씨는 외국계 기업에 입사한 뒤로 미국, 싱가포르 등에 살며 외국계 기업과 국내 대기업에서 일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손씨는 직장에 몸담은 시간이 10년이 넘어가자 몸이 지치는 걸 느꼈다고 한다.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미국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귀국이 한 시간 늦어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도 그를 낙담하게 했다.

세운상가 재생 동참한 공대 출신 플로리스트 손은정씨 - 2

삶의 전환점을 찾던 손씨가 찾은 것은 꽃이었다.

장기 출장을 갔던 프랑스에는 하다못해 정육점에도 꽃 한두 송이는 놓여 있었다. 그 꽃을 보며 사람들이 예뻐하는 걸 대하다 보면 자신의 무기력증도 사라질 것이라고 손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손씨는 꽃의 매력을 다른 데서 찾았다.

"꽃이 예뻐서 좋은 게 아녜요. 언젠가는 꽃도 져야 하는데,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핀 다음 시들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하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기쁨은 물론 슬픈 감정까지 나타내는 데 쓰이는 꽃의 매력에 빠졌다는 손씨는 프랑스에서 틈틈이 꽃꽂이를 배웠다. 퇴사하고서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혔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 열정을 따라 도전하라'고 조언해줄 것 같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무조건 직장을 때려치우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변한 상황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이 됐을 때 결단해야죠."

손씨의 다음 관심사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는 올해 2월 카이스트의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에 입학했다.

손씨는 "개인과 사회가 불행하면 기업도 이윤 극대화라는 본질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저성장 시대에 개인과 기업이 사회적으로 동행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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