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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시아 최고 더비' 테헤란더비…男 관중만 10만명

송고시간2016-09-17 16:22

이란 프로리그 숙적 에스테그랄 vs 페르세폴리스 '축구전쟁'

남성들의 해방구…폭력사태도 빈번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그런 색깔을 입고 오면 어쩌려고 그래"

16일 오후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만난 이란 기자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별다른 생각 없이 입고 온 파란색 셔츠를 두고 한 말이었다.

테헤란 더비가 열린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
테헤란 더비가 열린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

경찰이 페르세폴리스(좌측)와 에스테그랄 응원석을 떨어뜨려놓고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이날은 이란 프로축구리그(페르시안 걸프 프로리그)의 전통 라이벌 에스테그랄과 페르세폴리스가 한판 붙는 날이다.

이른바 '테헤란 더비'.

두 팀 모두 테헤란을 홈으로 둬 붙여진 이름이다.

에스테그랄은 파란색, 페르세폴리스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기 때문에 '샤흐르 아버드 소르카비'(자주색 더비)라고도 한다. 1968년부터 이어진 전통의 라이벌전이자 2008년 월드사커매거진이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더비다.

경쟁심이 너무 뜨겁다 못해 격렬해 입은 옷 색깔에 따라 '피아'가 구분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기자라고 하더라도 옷 색깔에 따라 편이 갈리기 때문에 테헤란 더비를 '안전하게' 취재하려면 중립적인 흰색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게 이란 기자의 조언이었다.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이란 체육·청소년부에서 취재허가를 받아 아시아 최고의 더비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모인 관중은 어림잡아 10만명.

거대한 아자디 스타디움은 정확히 절반으로 갈렸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화합이나 배려는 없었다. 말 그대로 전쟁 일보 직전의 긴장감만 팽팽했다.

경기 전 페르세폴리스 응원석에서 수차례 파도타기 응원이 벌어졌는데 두 팀의 경계선에서 딱 멈췄다. 상대편에 대한 야유와 '저주'를 담은 외침만 오고 갔다.

경찰은 붉은색과 파란색 사이를 20m 정도 간격을 띄우고 삼엄한 경계를 폈다.

흥분한 양측 서포터즈 사이에서 폭력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1995년 1월에 벌어진 테헤란 더비에선 심판의 편파판정을 이유로 패싸움이 벌어져 한동안 이 경기엔 외국인 심판을 초빙하기까지 했다.

페르세폴리스의 팬은 네 손가락을 펴면서 에스테그랄 응원단을 자극했다. 직전에 열린 올해 4월 테헤란 더비에서 페르세폴리스가 4-2로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두 팀 모두 별다른 관계가 없는 까닭에 한국 팀과 같은 색깔인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페르세폴리스를 응원하려 했으나 곧 마음을 접었다.

공교롭게 기자석이 파란색 유니폼의 에스테그랄 응원석 한가운데였던 탓이다.

페르세폴리스의 위협적인 슛에 한 기자가 환호하자 바로 앞 에스테그랄 응원석에서 기자석으로 쌍욕과 함께 물병, 쓰레기 더미가 날아들었다.

파란색 셔츠를 입고 온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기자석을 벗어나 에스테그랄 응원석으로 갔더니 음식을 권하면서 "에스테그랄"을 함께 외치자고 했다.

테헤란더비가 열린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더비가 열린 아자디 스타디움

전반을 마치고 반대편인 페르세폴리스 응원석으로 옮겼다.

파란색 옷을 입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란 기자의 농담이 농담이 아니었다.

영어로 "노 블루"라고 소리치며 험악한 표정으로 "파란 놈들에게 가라"고 사방에서 옷을 잡아당겼다.

기자 취재증을 보여주면서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니 그때야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이길 거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다음달 11일 아자디 스타디움에 있을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축구 최종예선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국 팀은 1974년 이후 42년 동안 2무 4패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두 팀의 경쟁심은 이란 사회의 계급성과 맞닿는다.

이슬람혁명 이전인 1970년대까지 페르세폴리스는 노동자·서민 계급을 대변했고, 에스테그랄(당시 타즈SC)은 상류층의 지지를 받았다.

페르세폴리스를 응원하는 서포터즈
페르세폴리스를 응원하는 서포터즈

에스테그랄을 응원하는 서포터즈
에스테그랄을 응원하는 서포터즈

이란에서 보는 축구경기의 색다른 점은 관중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여성은 남자 축구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란 여성인권 단체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역시 관중 10만명 모두 남자였다.

관중뿐 아니라 취재 기자, 경기 진행요원, 장내 안내방송, 응급 요원 모두 남자였다. 여성 화장실은 물론 없다.

20년전 군대를 제대한 이후 이렇게 많은 남자와 함께 있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멋진 장면이 벌어질 때마다 "우워∼"라는 함성이 스타디움을 울렸는데 과거 군대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에서 인기 여자가수가 나왔을 때를 연상케 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 때문에 딱히 즐길만한 오락거리가 없는 데다 남자들만 모인 곳이어선지 이란에서 축구경기장은 그야말로 이들의 해방구처럼 보였다.

험한 욕설이 난무했고, 흡연이 자유로웠으며 구내매점은 남자 고등학교의 구석진 곳의 풍경과 비슷했다.

이날 경기는 0-0 무승부가 됐다.

이로써 에스테그랄은 역대 전적 24승 20패 39무로 우세를 이어갔다.

그렇지만 올해 이란 프로축구리그에선 페르세폴리스는 1위를 달리고 있고, 에스테그랄은 개막 6주간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4위에 처져있다.

16일 벌어진 테헤란 더비[출처:타스님뉴스]

16일 벌어진 테헤란 더비[출처:타스님뉴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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