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기록 부재의 실존 인물, 한국영화 대세로 자리잡다

송고시간2016-09-15 11:00

'덕혜옹주', '고산자', '밀정' 실존인물에 상상력 가미…역사왜곡 논란도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올여름 극장가를 눈물로 적시게 했던 '덕혜옹주'와 추석 연휴 특수를 노리고 개봉한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 '밀정' 등 최근 강세를 보이는 한국영화는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역사적으로 존재했지만 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들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사료가 적은 것이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긍정적일 수 있지만 허구적 내용이 너무 가미되다 보면 역사 왜곡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덕혜옹주'는 상영 기간 내내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논란의 요지는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느냐'이다.

극 중 덕혜옹주가 일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거절하고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 앞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는 한편 극 중 인물들이 덕혜옹주를 '조선 황실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언급하는 장면 등이 논란에 불씨를 제공했다.

하지만 논란이 어느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던 것은 일방의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해줄 만큼 확실한 자료가 없던 탓이 크다.

덕혜옹주의 삶을 미화했다고 주장하는 측도 사실 덕혜옹주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덕혜옹주가 속한 조선 황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나라가 일제에 넘어갈 때 조선 황실은 저항은커녕 오히려 제 잇속을 챙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덕혜옹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셈이다.

'덕혜옹주'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권비영 작가의 주장처럼 덕혜옹주가 항일했다는 증거도 없고 친일했다는 자료도 없다. 자신의 아버지인 고종이 독살을 당했다고 믿고 있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유학 가 그곳에서 정략결혼까지 하게 된 덕혜옹주가 과연 일제에 부역했을까. 소극적으로 나마 저항하지 않았겠냐는 것이 '덕혜옹주' 제작진이 영화를 만들 때 가진 입장이었다.

영화 '덕혜옹주' 포스터
영화 '덕혜옹주' 포스터

논란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의 삶을 다룬 영화 '고산자'에서도 재연됐다. 개봉 전부터 일제의 식민사관을 따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제는 '조선어 독본'이라는 교과서를 통해 김정호가 나라의 도움 없이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점을 찬양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이 누설되면 큰일'이라며 대동여지도를 몰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투옥했다고 전했다. 이는 조선 왕조의 무능함을 부각해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의도였다.

실제 영화의 내용은 식민사관과 달라 영화가 개봉된 후 논란은 곧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식민사관의 주장이 근래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김정호의 일생이 세상에 알려진 바가 적다.

그가 황해도 출신이라는 점은 비교적 명확하나 생몰 연대나 신분, 가계 등 기초적인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의 기록을 다 합쳐봐야 A4지 한장 내외라고 할 정도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영화 '밀정'은 1923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이 일제의 주요 거점시설을 파괴할 목적으로 폭탄을 대거 국내로 반입하려고 하다 들통나 붙잡힌 사건이다.

이 사건의 명칭에 '황옥'이라는 인물이 들어간 것은 조선인으로 조선총독부 경기도경찰부 소속이었던 황옥 경부가 이 거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황옥은 실제 의열단에 가입해 김시현과 같은 의열단원에 적지 않는 도움을 준 인물이다.

하지만 폭탄 반입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 황옥은 의열단원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잠입한 것이라는 '폭탄 발언'을 해 그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의열단원을 도와준 것이 결국 일제 경부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황옥을 같은 편으로 간주한 의열단원의 증언이 적지 않아 그가 일제의 밀정이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는 미궁에 빠졌다.

게다가 황옥은 실제로 실형 선고를 받아 수감 생활을 했고 출소 후 일본 경찰로 복귀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의 동생 황직연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대전형무소에서 순국하기도 했다.

'밀정'에서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 경부가 바로 이 황옥 경부를 모델로 했다.

'밀정'은 '덕혜옹주', '고산자'와 같이 기록이 불분명한 실존 인물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두 영화와 달리 역사 왜곡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이정출이 황옥 경부만큼이나 정체가 모호하게 그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그의 정체를 어느 한쪽으로 규정 짓는다.

영화 '밀정' 포스터
영화 '밀정' 포스터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허구성을 가미할 때 기록이 없는 것이 매력적일 수 있다"며 "이를 두고 사실과 어긋난다는 비판할 수 있지만 기록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픽션(허구)에 더 방점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pseudojm@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

CID : AKR20200326019800065

title : 시애틀서 입국한 미국인 승무원 '양성'…인천 확진자 4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