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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통합 지지부진한 아세안에 구세주? 파괴자?

송고시간2016-09-13 14:22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지난 8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로드리고 두테르테(71) 필리핀 대통령이었다.

6월에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폭언에 가까운 막말과 튀는 언행으로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세계무대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주요국 정상들을 들러리로 만들면서 국제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1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아세안의 한 외교관은 아세안 정상회의 무대에서 선보인 두테르테의 언행을 "마치 마피아 같았다"고 표현했다.

필리핀 정장인 긴소매의 셔츠형 상의 바롱 타갈로그를 입은 두테르테 대통령은 정상회의 석상에서도 언제나처럼 단추 2개를 풀어 소매를 걷어붙인 채 바로 앞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55)을 닦아 세웠다. "미국의 통치를 받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은 수없이 살해당했다. 그런데 뭐가 인권이냐"

직전 발언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국과 유엔이 필리핀 경찰의 마약범죄 용의자 사살을 "초법적인 살인"이라고 비난한 게 그의 심사를 꼬이게 했다. 필리핀 외무부가 준비한 자료를 내팽개치고 미국 비판을 쏟아냈다. 자료에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장을 부인한)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중시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 이틀 전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욕설에 가까운 폭언을 해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이 취소됐다. 두테르테는 정상회담 취소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발언을 "후회한다"며 조신한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7일 만찬이 끝난 후에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 언제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필리핀이 당면한 최대 외교과제는 남중국해 진출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다. 미국, 일본과 보조를 맞춰 중국 견제를 추진해온 필리핀 외교부 당국자는 크게 당황했다. 찰스 호세 필리핀 외교부 대변인은 "말할 게 없다"며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두테르테가 100년쯤 전에 종주국이던 미국 군인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주민살해 사진을 준비해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까지 내보인 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12일에는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 무장단체 소탕전에 투입되는 필리핀군의 교육과 훈련을 지원하고 있는 미군 특수부대의 "철수"를 요구해 미국을 자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 정권이 쌀쌀맞게 대해온 중국에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남중국해를 둘러싼 힘의 균형에 영향을 우려하는 미국, 일본, 호주 등을 당황케 했다.

그의 과격한 발언과 인권을 무시하는 행동은 국내에서는 인기요인이기도 하지만 해외에서는 비판이 거세다.

4월에는 호주 여성을 멸시하는 발언이 동영상 사이트에 퍼져 호주 전국을 분노케 했다. 다바오에서 성폭행을 당한 끝에 살해된 호주 여성에 대해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맨 먼저 했어야 하는데.."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것.

필리핀 주재 호주 대사가 "강간이나 살인은 농담대상이 아니다"라고 비난하고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도 이에 동조했지만 두테르테는 "미국과 호주 대사의 입을 꿰매 주겠다"고 응수했다.

총기 매니어로 언론을 싫어하지만, 낮잠을 자는 대신 밤늦게까지 일하기도 하는 괴짜. 강렬한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충격적인 외교데뷔를 한 두테르테 대통령이 통합이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는 아세안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구세주가 될지, 아니면 파괴자가 될지 회원국들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EPA=연합뉴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EPA=연합뉴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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