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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인생의 두 번째 고난이 찾아왔을 때, 우리를 기억하세요"

송고시간2016-09-13 12:49

슈팅 트라우마에 걸린 김억수, 고관절 괴사로 탁구채 놓은 김미순

뒤늦은 나이에 역경의 언덕을 다시 뛰어넘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장애인 양궁대표팀 이억수(51)와 김미순(46)은 젊은 나이에 큰 고난을 겪었다.

이억수는 21살 때 특전사 하사로 복무하던 중 훈련을 하다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김미순은 12살 때 '고관절 괴사'라는 끔찍한 질병에 걸렸다.

이억수는 사고 이후 걷지 못했고, 김미순은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을 스포츠로 이겨냈다. 이억수는 활을 들었고, 김미순은 탁구 라켓을 쥐었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삶의 희망이자 목표였다. 아울러 세상과의 연결고리였다.

김미순은 "만약 탁구를 배우지 않았다면 방구석에서 평생을 지냈을 것"이라며 "스포츠를 하면서 성격이 밝아졌다"라고 말했다.

두 선수는 화려하게 인생의 2막을 열었다. 이억수는 1992년 바르셀로나 패럴림픽에서 단체전 동메달, 1996년 애틀랜타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미순도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탁구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두 선수는 장애의 벽을 넘으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삶의 유일한 희망을 접어야 했다.

이억수는 어느 날 갑자기 활시위를 손에서 떼지 못했다.

마치 야구에서의 스티브블래스 증후군(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처럼 화살을 제대로 쏘지 못했다.

그는 "화살을 손에서 놓으면 실수할 것 같다는 공포가 머릿속에 가득 찼다"라며 "일종의 트라우마였다"라고 말했다.

김미순은 관절의 통증이 심해져 탁구를 포기했다. 그는 "열심히 훈련하면 보상이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훈련량과 비례해 통증이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인생의 두 번째 고난과 마주한 이억수, 김미순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젊지 않은 나이에 다시 한 번 도전을 시작했다.

이억수는 마흔 살 때인 2005년에 주 종목을 리커브에서 컴파운드로 바꿨다. 리커브는 일반 활, 컴파운드는 날개에 도르래가 있는 활을 사용하는 종목이다.

컴파운드는 도르래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힘으로 활을 쏠 수 있고, 활시위를 놓는 동작이 간단하다.

슈팅 트라우마에 걸린 이억수에겐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는 "모험이었다"라며 "당시 유럽권 선수들이 컴파운드 종목에서 초강세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새 종목을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주 종목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김미순은 아예 주 종목을 탁구에서 양궁으로 전향했다. 41세 때인 2011년의 일이었다.

그는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라며 "장애인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다"라고 말했다.

불혹을 넘겨 새로운 삶을 개척한 두 선수는 2016 리우패럴림픽 양궁 혼성 컴파운드 종목에서 같은 조로 출전해 동메달을 합작했다.

이억수는 7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 기록을 이어가는 한편, 컴파운드에서 생애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미순은 첫 패럴림픽 출전에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두 선수는 인생 제3막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12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패럴림픽 양궁 혼성컴파운드 터키와의 경기. 이억수(왼쪽) 선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오른쪽은 김미순 선수. 2016.9.13kjhpress@yna.co.kr(끝)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12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패럴림픽 양궁 혼성컴파운드 터키와의 경기. 이억수(왼쪽) 선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오른쪽은 김미순 선수. 2016.9.13kjhpress@yna.co.kr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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