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집트 시골마을의 추석 '희생제'…이슬람식 축제분위기
송고시간2016-09-12 19:30
이슬람권 최대 명절 맞아 길거리서 소·양 도축도
청년들은 고기 배분 봉사활동…'고기 3분의 1은 빈자의 몫' 의식 실천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희생제)를 하루 앞둔 11일(현지시간) 오전 이집트 남부 중소도시 페이윰(Fayoum).
수도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약 3시간 이동해 도착한 페이윰의 '살림 개드'란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 거리는 왁자지껄한 한국의 옛날 시골 마을을 연상케 했다.
거리는 1970~1980년대 한국의 추석 전 재래시장 분위기처럼 분주했다. 축제에 쓸 고기와 음식, 선물, 옷가지 등을 사러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당나귀나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나르는 청년들이나 3륜 자동차 '툭툭'을 이용해 양을 옮기는 풍경은 이채로웠다.
픽업트럭으로 소와 염소, 양을 실어나르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아랍식 전통 복장인 갈라베야를 입은 남성이 도로에서 소나 염소를 몰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길가에서 갈라베야 복장의 한 상인이 도살한 양의 몸통을 걸어 놓고 고기를 직접 썰어 팔면서 무게를 놓고 주민과 흥정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제일 번화한 거리 중심의 이발소 내부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 남성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그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옷이나 어린이 장난감을 파는 가게, 카페 등 다양한 상점이 늘어서 있다.
평소엔 외부 활동이 제한되는 여성들도 희생제를 앞두고는 화려한 히잡을 쓰거나 색깔이 들어간 니캅이나 부르카를 입는 등 몸치장에도 신경을 쓴 분위기였다.
종교적 색채가 대도시보다는 좀 더 짙은 마을인 탓에 성인 여성 대부분이 몸 전체를 천으로 가린 복장을 하고 있었다.
페이윰은 카이로 등 대도시와 비교해 가난한 지역으로 분류되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은 편이었다.
이 마을 한가운데서 만난 주민 아와 다라샤이드(25)는 "가장 큰 행사이자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를 맞아 행복하다. 모든 가족과 친척, 이웃이 이 기간 서로 오가며 음식을 나눠 먹는다"며 웃으며 말했다.
다라샤이드 주변에 있는 이 마을의 어린이들 3~4명은 동양인 기자를 졸졸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며 미소를 지었다. 일부 어린이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거리를 뛰어다녔다.
여성들은 바깥으로 나오지는 않은 채 창문이나 문틈으로 기자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행운도 따라 이 마을에 봉사활동을 온 이집트 최대 봉사단체 중 하나인 리살라(Resala)의 소개로 이색적인 축제의 현장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께 이 마을 작은 냇가 옆에 마련된 시멘트 바닥에 다 큰 소 2마리가 나란히 뉘어져 있었다. 희생제 첫날 이 마을 주민의 식탁에 올려지기 위해 도살될 소들이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 주민 5~6명과 봉사단체 회원들은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4개의 발들을 끈으로 묶었다. 소들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는지 발버둥 치려 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한 남성은 이 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소의 등을 연신 쓰다듬기도 했다.
그러다 주민 중 건장하고 경험 많아 보이는 남성이 "비쓰밀라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의 이름으로, 알라는 가장 위대하다)라고 말하고 칼로 소의 목을 베어 피가 모두 흘러 나오게 했다.
이어 다른 남성이 수도꼭지와 연결된 물을 계속해서 뿌리면서 소의 몸통과 바닥의 핏물을 금세 제거했다.
이들은 소가죽을 벗겨낸 뒤 먼저 내장을 꺼냈다. 이후 소 몸통을 나무 기둥에 연결된고리에 걸어 놓은 뒤 주요 부위별로 잘라냈다.
이렇게 해체된 고기와 내장은 주변에 설치된 봉사단체 임시 천막 내 작업장으로 옮겨져 다시 일정한 크기로 잘게 썰렸다.
자원봉사자들이나 지역 주민은 이러한 도살 과정에 크게 놀라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길거리 도축 장면이 잔인하다고 일부 외국인들이 지적하기도 하지만 현지인들은 매년 이렇게 소나 양을 잡는 장면을 봐왔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실제 호기심에 이를 지켜본 어린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봉사단체 회원인 마흐무드(26)는 "희생제를 맞아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이 최대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소의 목에 있는 신경을 단숨에 끊는 식으로 도축을 한다"며 "동물의 모든 피를 몸 밖으로 나오게 해 피가 많이 보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길거리 도축 행위가 어린이나 여성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으냐는 지적에는 "이런 장면을 오랫동안 봐 온 데다 집 내부는 협소해서 큰 동물을 도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러한 도살 방식은 이젠 전통이 돼 이를 거부하는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에서 소는 한 마리에 가격이 1만2천이집트파운드(약 150만원), 염소는 3천이집트파운드(약 38만원)에 달한다. 일반 서민 가정의 한 달 평균 수입이 20만 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명절을 위해 쓰기에는 매우 비싼 가격이다.
따라서 지방 지주나 부자들 또는 도시 기부자들이 돈을 모아 희생제에 맞춰 소와 양, 염소 등을 가난한 지방에 보내는 게 일종의 전통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청년층으로 구성된 봉사단체들이 해마다 마을을 달리하며 도살된 고기를 포장, 지급하는 봉사활동을 한다.
이날 하루 동안 도살된 전체 14마리의 소와 염소 고기와 내장은 이후 포장 작업을 거쳐 이 마을 265가구에 전달됐다.
이 마을을 찾은 리살라 봉사단체 회원 300여명 중 절반가량은 오후엔 10명 정도로 한 조를 이뤄 각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명절 인사를 나누고 고기를 나눠줬다.
각 가정에 배달된 고기와 내장은 다음 날 시작하는 희생제부터 먹을 수 있도록 요리된다. 양이나 소의 가죽은 전문가의 손에 넘어가 1주일간 세척과 건조 과정을 거쳐 사용된다고 한다.
이슬람력(歷)을 기준으로 12월 10일 시작하는 희생제는 사우디아라비아 성지 메카 연례 성지순례(하지)가 끝날 때쯤 열리는 이슬람 최대 명절이다.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단식 성월인 라마단 종료 후 열리는 이드 알피트르를 '소(小) 축제'란 의미로 '스몰 바이람', 희생제를 뜻하는 이드 알아드하는 '빅 바이람'(대(大) 축제)이라고 각각 부른다.
희생제는 종교 색이 짙은 지방으로 갈수록 일찌감치 일을 쉬고 열흘간 단식을 행하면서 축제를 준비한다. 이 때문에 가족과 함께 명절을 함께 하기 위해 미리부터 휴가를 내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명절 음식이 마련되면 희생제 연휴 기간 이집트인들은 한국의 추석이나 설처럼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가족, 친척을 방문하고 이웃과 교류의 시간을 가진다.
알라에게 소나 양, 염소 등 가축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 후 나온 고기는 가족과 친척,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희생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신에게 복종의 의미로 아들인 아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 하자 신이 그의 신앙심에 감복해 그의 아들 대신 양을 제물로 바친 후 예배를 드리도록 한 데서 유래한다.
희생제 기간 이슬람권 부호들이나 기관, 봉사단체들은 수십 마리의 소나 양을 잡아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선행도 베푼다.
희생제 첫날 무슬림(이슬람교도)은 양이나 소 등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치른 뒤 3분의 1은 가족이, 다른 3분의 1은 친척·친구가 각각 먹고 나머지 3분의 1은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준다.
양 한 마리는 한 사람 몫의 죄를, 가격이 훨씬 비싼 소와 낙타는 일곱 사람 몫의 죄를 대신한다고 여겨진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은 매년 가족·친척을 위해 양 한두 마리를 직접 잡는다.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희생제가 시작되는 날 전후로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연휴를 맞는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 명절에는 부작용도 제기된다.
큰 규모로 장을 보는 탓에 한꺼번에 자금이 시장에 유통되면서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거나 희생제를 앞두고 양이나 소의 가격이 급등하기도 한다. 양 수요 급증으로 사재기나 부족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또 신에 대한 감사와 불우 이웃 돌봄과 같은 의미를 되새긴다는 본래의 취재에서 벗어나 희생제나 라마단이 상업적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희생제나 라마단 때 특급 호텔에서 소수 계층을 위한 특별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10km 떨어진 페이윰의 한 시골마을 풍경. 이슬람권 최대 명절인 희생제를 앞두고 길거리에서 소와 양이 도축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2016.9.12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10km 떨어진 페이윰의 한 시골마을 풍경. 이슬람권 최대 명절인 희생제를 앞두고 길거리에서 소와 양이 도축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주민 등이 소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 2016.9.12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10km 떨어진 페이윰의 한 시골마을 풍경. 이슬람권 최대 명절인 희생제를 앞두고 길거리에서 소와 양이 도축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상인이 양과 염소의 고기를 파는 장면. 2016.9.12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페이윰의 한 시골마을 풍경. 2016.9.12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페이윰의 한 시골마을 풍경. 2016.9.12

(페이윰<이집트>=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페이윰의 한 시골마을 풍경. 한 청년이 당나귀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16.9.12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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