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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한일 오가며 판소리 배운 재일동포 한국서 첫 완창

송고시간2016-09-11 08:11

'판소리 무형문화재 이수자' 지정 안성민씨…21일 한국문화의집서 공연

"재일동포 이야기 창작판소리로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


'판소리 무형문화재 이수자' 지정 안성민씨…21일 한국문화의집서 공연
"재일동포 이야기 창작판소리로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처음에는 판소리 소리 자체의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가사에 담긴 인생 이야기가 진짜 매력적이었습니다."

18년간의 배움 끝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로 지정받은 안성민(50·여)씨는 11일 조만간 열릴 한국에서의 첫 완창 공연을 앞두고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그는 21일 한국문화의집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인다.

재일동포 판소리 이수자 안성민씨 [안씨 제공]
재일동포 판소리 이수자 안성민씨 [안씨 제공]

재일동포 3세인 안씨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처음 배운 게 대학에서 같은 동포 3세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였다.

안씨는 "선배들이 '네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뿌리도 모르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느냐'고 얘기했다"며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선배 중 한 명이 준 판소리 테이프를 듣고 완전히 반했다"고 돌이켰다.

안씨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 여기저기를 알아봤으나 배울 만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자유자재로 소리를 내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말에 포기할 생각도 했다.

그러던 1998년 판소리를 배우겠다는 목표 하나로 하던 일도 그만두고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광주에서 1년 반 정도 윤진철 명창을 사사한 안씨는 한양대 대학원 국악과에 입학했다.

판소리를 알려면 한국음악 공부도 필요하다는 권오성 교수의 조언을 따라 이론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어려운 공부에 지쳐갈 때쯤 남해성 명창과 인연이 닿았다.

남 명창이 매년 구룡계곡에서 진행하는 여름 산공부 캠프에 2001년 처음 참여한 그는 이후 올해까지 매년 이 캠프에 참가하며 판소리를 배웠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안씨는 아직 배움이 부족하다 느꼈다. 직업을 대학 강사로 한 것도 방학 때인 여름에 한국에 오기 위해서였다.

안씨는 "남 선생님이 일본에서 온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판소리를 가르쳐달라고 했으니 당황하셨을 텐데 '우리 소리를 사랑하고 바다 건너까지 배우러 와줘 고맙다'고 하시더라"며 "발음도 좋지 않고 한국에 살지 않아 늘 부족하다 생각하지만 남 선생님이 '너밖에 할 수 없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재일동포 판소리 이수자 안성민씨 [안씨 제공]
재일동포 판소리 이수자 안성민씨 [안씨 제공]

안씨는 일본 오사카에서 석 달에 한 번씩 '안성민 판소리 라이브' 공연을 지금까지 20여 차례 진행했다.

일본 내에서는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크진 않지만, 젊은 관객들도 점차 늘고 있다고 안씨는 전했다.

안씨는 "소리 자체의 힘이 처음에는 크게 느껴졌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인생의 지혜, 갈등, 애정, 분노 등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 세계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연하면서 관객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일체감을 느낄 때, 공연 후 관객이 '웃고 울고 그래서 힘을 얻었다'고 말할 때 보람차다"고 활짝 웃었다.

안씨의 다음 목표는 자신과 같은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는 재일동포니 부족해도 이해해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수자가 된 후 남해성 선생님의 제자로서 당당하게 내 힘으로 서야겠다는 생각뿐"이라며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고, 창작판소리를 만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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