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인터뷰> 모국 찾은 로버트 김 "더이상 서운하지 않습니다"

송고시간2016-09-11 07:30

9년간 보낸 '로버트 김의 편지' 책으로 출간…21일 출판기념회"뜨거운 지지와 후원에 감사…모국의 미래 위해 밀알 되길"

[그림1]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벌써 20년이나 흘렀네요. 체포된 뒤 10년 동안은 갇혀 지냈고, 그 뒤 8년간은 모국과 동포를 걱정하는 글을 썼고, 그 뒤론 건강을 해쳐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이렇게 회복해 다시 모국을 찾게 되니 기쁩니다."

'로버트 김 스파이 사건'의 주인공인 재미동포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76) 씨가 부인 장명희 씨와 함께 지난 9일 모국을 찾았다.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에는 그의 셋째 동생 김성곤 전 국회의원의 부인이 나와 꽃다발을 건네며 반갑게 맞았다.

미국 해군정보국(ONI)에서 정보분석가로 근무하던 김 씨는 1996년 9월 24일 스파이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형을 받았다.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백동일 대령에게 북한 관련 정보를 넘겨준 혐의였다.

김 씨의 방한은 2005년 10월 5일 보호관찰 집행정지 결정으로 완전한 자유의 몸이 돼 그해 11월 모국을 찾은 이래 이번이 5번째다. 추석을 고국에서 맞는 것은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무려 50년 만이다.

10월 16일까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형제들과 함께 전북 익산의 선영에 성묘도 하고, 고향인 전남 여수에도 들르고, 친척들과 모여 송편도 맛보고, 관광 명소에서 고국의 가을 정취도 만끽할 계획이다.
[그림2]

11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그는 20년 전의 일을 꺼내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면서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8년 만에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미군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 정보분석가로 일하며 주류사회에 안착한 재미동포의 성공 사례로 꼽히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그 일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1남 2녀)도 숱한 고초를 겪었지요. 아직도 제 가슴속에는 큰 응어리가 맺혀 있습니다."

로버트 김이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된 사건은 미국과 한국에서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우방들은 알고 있는 정보를 동맹국인 한국에 제공한 것을 간첩 행위로 불 수 있느냐를 놓고 격론이 펼쳐졌고, 모국을 도우려다가 곤경을 겪고 있는데 정보를 넘겨받은 한국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만일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제가 백 대령에게 알려준 정보는 미국의 우방에는 자동으로 전달되는 것이어서 평소에도 신중하게 취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은 보안 불감증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 미국이 정보 제공 명단에서 한국을 빼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를 가볍게 여긴 저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 대처할 때도 미국의 사법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섭섭하지 않았는지 묻자 "당시에는 서운한 감정을 떨치기 힘들었다"면서도 "이제는 이미 다 지난 일이어서 잊어버렸다"며 말을 아꼈다. 그 대신에 "나와 일면식도 없는 많은 모국의 동포가 뜨거운 지지와 후원을 보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출소 후 첫 모국 방문을 나흘 앞둔 2005년 11월 2일 지인과 후원자들에게 편지로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렇게 시작된 '로버트 김의 편지'는 매주 수요일 이메일로 전해졌고, 조국과 동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그의 마음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늘어나 수신자가 3만여 명을 헤아렸다.

그의 관심사는 전문 분야인 국방 안보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육, 정치, 역사, 시민의식, 복지, 노사관계, 스포츠, 원자력 발전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다.

10년째 계속되던 그의 편지는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는 바람에 2014년 5월 7일 425회로 중단됐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고 통탄하며 쓴 마지막 글의 제목은 '이게 나라인가, 모든 것이 교육 탓"이었다.

이제는 다행히 건강을 되찾아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도 걱정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고령과 건강 때문에 예전처럼 정기적으로 글을 쓸 엄두는 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가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본 것이었고, 그처럼 오래 쓰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분이 격려해주셔서 의욕을 잃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 신문과 방송을 챙겨보고 틈틈이 메모해가면서 글감을 모으고 생각을 다듬느라 일주일이 금세 가더군요. 제 편지가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주장이 한국 정부의 정책에 반영되거나 한국 학부모들의 생각이 바뀌어 조기 유학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요."

"악성 댓글 때문에 마음이 상한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내 나름대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쓴다고 했는데 모든 독자가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반대 의견도 내 글을 아끼는 편달이라고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그림3]

그가 이번에 모국을 찾은 가장 큰 동기는 '로버트 김의 편지'가 책으로 선보이기 때문이다. 425편 가운데 80여 편을 골라 엮었다. 때때로 그에게 온정을 표시해온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출판 비용을 선뜻 내줬다. 오는 2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샹제리제센터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지난 20년 동안에도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너무나 뚜렷해지고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민주주의를 악용하려는 국민도 많아진 듯합니다. 책으로 다시 독자들과 만나는 제 글이 동포들에게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을 제공하고 모국의 미래를 위해 썩는 밀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heeyong@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