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록부 조작, 광주 한 고교만의 문제일까"
송고시간2016-09-09 07:01
"생기부 수정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전국종합=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광주광역시의 한 사립여고에서 명문대를 보내려고 학생들의 성적과 생활기록부를 조작해 충격을 주고 있다.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공교육 현장에서 교장과 교사들이 우등생만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어서 교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당장 대입 수시를 앞둔 상황에서 성적에 눈이 먼 일부 교사들의 일탈로 인해 수많은 학생이 피해를 보게 됐다.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과 내부 고발을 하지 못하는 사립학교의 문제와 함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에서 성적 수정권한을 임의로 부여할 수 있는 허점도 드러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교사가 몰래 점수 올려주고 1등급 만들어
학교 시험은 지필 시험과 수행평가로 나뉘며 지필 시험은 객관식과 서술형으로 이뤄져 있다.
객관식은 OMR 카드에 답을 기재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채점하고, 서술형은 교사들이 채점해 나이스에 입력한다.
이런 식으로 입력된 성적의 수정권한은 원칙적으로 담임교사와 해당 과목 교사에게 있다.
하지만 문제의 사립학교 수학교사는 특정 학생의 영어 과목 점수를 수정해 1등급으로 만들었다.
교장이 수정권한을 임의로 다른 교사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학생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지자 문제를 제기했고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찰 조사결과 해당 교사는 점수를 올려준 대가로 학부모로부터 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생활기록부도 마음대로…나이스 허점 드러내
광주 사립여고 A교장과 교사 2명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나이스에 무려 229회나 무단으로 접속했다.
학생 25명의 생활기록부에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36차례 조작했다. 이들은 교장이 성적순으로 선발한 1등급 학생들이다.
교장은 이들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대입 전형에서 유리하게 수정하도록 교사들에게 지시했다. 수시 전형에서 생활기록부 내용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수시 전형의 중요 평가 기준인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도 해당 교과 교사나 담임교사가 수정할 수 있지만, 전혀 관계없는 학년부장 교사가 손을 댔다.
이처럼 생활기록부를 멋대로 조작할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정권한을 임의로 부여할 수 있는 허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장은 나이스 접속 권한을 갖고 있는데 이를 학년부장이나 정보부장, 교무부장 등 다른 교사에게 일임할 수 있다.
문제의 학교는 이런 허점을 노려 무려 2년간이나 생활기록부를 조작했다.
지난 6월 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시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다.
이 지역의 사립고 A 교사가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자기가 지도한 동아리 학생 105명 중 30명의 생활기록부 '창의적 체험활동상황' 부분을 몰래 수정했다.
생활기록부 해당 영역을 수정할 권한이 없는 A 교사는 동료 교사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 인증서를 도용해 모두 39건을 무단 정정했다.
시교육청은 A 교사를 검찰에 고발했고 해당 학교법인은 A 교사를 파면했다.
◇ 성적·인성 담긴 생활기록부…수시 전형 당락 '좌우'
생활기록부에는 재학기간 학생들의 성적과 인성, 활동상황 등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나이스로 관리되는 생활기록부에는 학생의 인적사항, 출결사항, 수상 경력, 자격증 및 인증 취득, 진로 희망사항, 창의적 체험활동 실적, 교과학습 발달상황이 적힌다.
이 가운데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4가지로 나뉘는데 담임교사가 직접 작성한다.
대입 면접에서 입학사정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가장 높은 항목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누락된 부분이 있으면 정정할 수 있다.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란도 있는데 이 부분을 잘 써야 대입 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생활기록부는 교과 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전형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료다.
그만큼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잘 써달라고 담임교사에게 부탁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나이스 접속권한 제한해 공정성 높여야
공정성과 투명성을 기하기 위해 도입한 나이스가 허점을 드러내면서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선 교육청도 무단 수정 등을 막기 위해 조사를 하고 있지만 표본조사에 대체로 의존하고 있다.
학교 수가 많다 보니 전수 조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점수를 수정하는 권한은 담임교사와 교과 담당 교사 외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 교사가 나이스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시스템에 기록되고 수정 근거와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전교조 광주지부 관계자는 "교육당국이 나이스의 구조적 결함을 인정하고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나이스 접근 권한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광주만 그랬을까?"…성적 지상주의에 물든 사회
생기부 조작 사건이 발생한 문제의 사립여고는 지난해 8명이 서울대에 합격했고, 올해는 6명이 합격했다.
최근 서울대 합격생 수가 광주지역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이 학교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다.
이 학교는 우등생 25명을 심화반으로 운영해 별도로 관리했다.
사립학교의 특성상 이사장이나 교장이 성적 위주로 학교를 운영하면 교사들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어 생기부 조작과 같은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입 수시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내신이나 생활기록부도 그만큼 중요해져 교사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수도 있다.
한 학부모는 "성적을 올리려고 생기부나 성적을 조작하는 것이 광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생기부를 수정하는 사례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임진희 광주지부장은 "생활기록부 자체가 교사에 대한 신뢰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명문대에 목을 매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이런 도덕 불감증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어 정기적인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형민우 김용민 기자)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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