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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무장공비 최후 섬멸지…'연화동 전투'를 아시나요

송고시간2016-09-03 07:05

(인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20년 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마침표가 된 인제 연화동 전투를 아시나요."

1996년 9월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20주년을 앞두고 당시 무장공비를 최후 섬멸한 '인제 연화동 전투'가 새삼 주목된다.

연화동전투 전적비 방문한 장병
연화동전투 전적비 방문한 장병

육군 3군단 예하 장병들이 연화동 전투 전적비를 찾아와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 전투는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잠수함 침투한 무장공비 25명 중 1명 생포를 제외하고 마지막까지 국군에 저항한 공비 2명을 사살한 전투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마침표를 찍은 사건인 셈이다.

당시 이 전투를 끝으로 1996년 9월 18일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49일만인 그해 11월 5일 종료됐다.

인제군은 이 전투를 기념하고자 1998년 11월 연화동 계곡에 안보공원과 전적비, 안보기념관을 조성했다.

연화동 계곡은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북면 용대삼거리에서 진부령 쪽으로 3㎞ 지점에 있다.

지금도 안보기념관 인근에는 당시의 교전 흔적 등이 남아 있다.

또 2개 지점에 '무장공비 사살 지점'이라는 푯말이 서 있어 간담을 서늘케 한다.

무장공비 사살지점 푯말
무장공비 사살지점 푯말

안보기념관 인근에 '무장공비 사살 지점'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20년 전인 1996년 9월 18일 새벽에 발생했다.

당시 강릉 앞바다에 침투해 정찰요원과 접선 후 북한으로 복귀하려던 북한 잠수함은 50m 해상에서 좌초했다.

잠수함은 택시기사가 최초로 발견해 신고했다.

그사이 잠수함에 타고 있던 무장공비 25명은 강릉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을 통해 내륙으로 침투했다.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도내 대부분 지역은 최고 수준의 방어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대열에서 이탈한 이광수는 독자적으로 행동하다가 당시 강릉경찰서 강동파출소 소속 최우영 경장과 전호구 경장에 의해 생포됐다.

이때부터 연화동 전투로 대간첩 침투 작전이 최종 종료될 때까지 청학산 작전, 단경골 작전, 괘방산 작전, 칠성산 작전, 보광리 작전, 목계리 작전, 오대산 지역 작전, 노인산 지역 작전 등이 49일간 펼쳐졌다.

대침투 작전에는 군과 예비군, 경찰 등 연인원 150만 명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무장공비 11명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13명은 대간첩 침투 작전 중 사살됐다.

잠수함을 비롯해 367종 4천12점을 노획했다.

그러나 군인 12명과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장병 27명이 작전 중 다쳤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마침표를 찍은 연화동 전투 전적비 인근에는 국군 최초의 유격대였던 백골병단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도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잊혀 연화동 전투 전적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화동 안보공원을 관리하는 3군단 예하 12사단 장병만이 간간이 찾아와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지난 2일 이곳을 찾은 한 장병은 "신입 병사가 부대로 전입해 올 때마다 방문해 당시 희생된 선배 전우의 넋을 기리고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연화동전투 전적비 참배하는 장병
연화동전투 전적비 참배하는 장병

육군 3군단 예하 장병들이 연화동 전투 전적비를 찾아와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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