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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파더' 박근형 "은퇴요? 불러줄 때까지 계속해야죠"

송고시간2016-08-23 09:31

"뒷주머니에 대본 꽂고 다니는 후배 제일 싫어"


"뒷주머니에 대본 꽂고 다니는 후배 제일 싫어"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배우라면 비슷한 캐릭터도 다르게 표현해야 합니다. 100가지 역할이 있다면 다 해보고 싶어하는 게 바로 배우거든요."

배우 박근형은 올해 77세로, 경력 57년 차의 배우다. 1959년 데뷔 이후 TV 드라마, 영화, 공연, 연극까지 출연한 작품만 200편이 넘는다.

그런 그가 최근 필모그래피에 작품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가 주연한 영화 '그랜드파더'(이서 감독)다.

이달 말 '그랜드파더' 개봉을 앞두고 23일 서울 인사동의 한 호텔에서 박근형을 만났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보여준 그는 6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팔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배우로서의 끝없는 욕심"을 들었다.

그는 "내 또래의 다른 사람이 맡은 배역을 보면서 '나 같으면 그렇게 연기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자꾸 비교해보고, 도전해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연기의 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박근형이지만 '그랜드파더'에서 주인공 '기광' 역할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기광'은 베트남 참전용사로 고엽제 후유증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잊으려 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 어느 날 아들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유일한 혈육인 손녀(고보결)를 만난다. 그리고 아들의 심상치 않은 죽음과 손녀, 주변 인물들 사이에 얽힌 사연과 음모를 알게 되면서 직접 엽총과 장도리를 들고 복수에 나선다.

박근형은 "한 작품 안에서 이처럼 변화무쌍한 감정을 표현한 건 이 영화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근형은 홀로 사는 노인의 외로움과 아들을 잃은 슬픔, 손녀에 대한 연민 등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많지 않은 대사 대신에 깊은 눈매와 굵은 주름 하나하나에도 내면을 투영했다.

전작 '장수상회'(2015년)에서 70세 연애 초보 '성칠'역을 맡아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과 달콤한 로맨스를 선보인 것과는 상반된 역할이다.

그는 "대본을 받았을 때 조직범죄에 맞서 싸우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면서 "자기만 살려고 평소 어울려 지내던 이웃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하는, 경쟁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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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리암 니슨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테이큰' 시리즈와 주로 비교된다.

박근형은 "'테이큰'은 납치된 딸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활약을 주로 다뤘다면, '그랜드파더'는 한 남자가 하나뿐인 혈육에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굳이 따진다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와 감정상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랜토리노'(2008년)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노인이 이웃집 이민자 가족과의 소통을 통해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은퇴작이다.

총 50회차로 진행된 '그랜드파더'의 촬영 과정은 70대 베테랑 배우에게도 녹록지 않았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폐쇄된 공간에서 촬영하면서 어지럼증을 느껴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고, 대역 없이 액션 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버스 기사인 주인공을 연기하려 버스운전 면허까지 직접 땄다.

철저한 프로 근성 때문에 타고난 배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다른 노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1940년 전북 정읍의 부잣집 둘째 아들로 태어난 박근형은 어렸을 때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로 유학 와 휘문고를 다녔지만, 고교 때 전국 연극경연대회에 나가 연기의 맛을 안 뒤 진로를 바꿨다. 고교 졸업 후 1년 동안 충무로에서 연기 수업을 받고 당시 처음 개설된 중앙대 연극영화과(1959년)에 진학해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그의 연기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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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프리랜서' 선언한 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 마음에 드는 작품만 골라 출연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30대 후반에 가서야 아이들 학비 정도를 집에 가져다줄 정도가 됐다 한다.

박근형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고, 항상 위태로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소속된 곳이 없는 만큼 누군가 불러줄 때를 대비해 항상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며 철저히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 덕분일까. 70대 후반인 지금까지 불러주는 곳이 많아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박근형은 얼마 전 막을 내린 연극 '아버지'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 역을 맡아 40년 만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섰다. 지금은 SBS 아침 드라마 '사랑이 오네요'에도 출연 중이며, 영화 '그랜드 파더'는 이달 31일 극장에 내걸린다.

박근형은 후배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으로 알려져있다.

"저는 바지 뒷주머니에 대본을 꽂고 다니며 스타인 것처럼 행동하는 후배들이 제일 싫습니다. 대본을 계속 봐야 하는데, 놀러 다니고 술 마시고…. 저는 항상 독서를 하든가, 연극을 하든가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라고 조언하죠. 가만히 감나무 밑에 앉아 감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후배 걱정이 많은 박근형은 고향인 정읍에서 조그마한 극단을 설립해 작가, 배우, 연출가를 키우는 일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또 연기에 관심 있거나 소질이 있는 일반인들이 직접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관람도 할 수 있는 토양을 닦아놓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그래도 박근형에게 아직 1순위는 연기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 태어나면 연기는 절대 안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은퇴 이야기를 꺼내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은퇴요? 제가 쓰임새가 없어 아무도 부르지 않을 때, 은퇴를 발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에요. 그래도 그때까지 끊임없이 준비하고 대비해야죠."

그의 연기 열정을 물려받아서일까. 박근형의 막내아들 윤상훈은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이고, 그의 큰 손주도 올해 연기에 뛰어들어 3대가 연기를 이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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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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