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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 머리에서 튀어나온 '모두를 위한 연구 공간'

송고시간2016-08-15 07:00

모두의 연구소 창립 김승일씨…직장인·창업가, VR·인공지능 등 자율 연구


모두의 연구소 창립 김승일씨…직장인·창업가, VR·인공지능 등 자율 연구

발명가 머리에서 튀어나온 '모두를 위한 연구 공간' - 2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승일(40) 박사의 직업은 발명가다. 다만 발명하면 통상 떠올리는 이미지처럼 직접 땀 흘려 공방에서 시제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대신 심리학·경영학·공학 등 책을 읽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동작 인식 카메라를 2대 이상 늘어놓는 병렬 기법, 고효율 증강현실(AR) 마커, 스마트폰 카메라를 압력센서로 바꾸는 기술.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과 그림을 곁들인 소(小) 논문으로 다듬는다.

워드 파일로 논문을 특허 회사에 보내면 변리사가 이를 특허안으로 만든다. 이렇게 출원한 특허가 50개. 다양한 분야에서 다작한 덕에 최상위 발명가란 뜻의 '플래티넘 인벤터'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파는 일로 '밥벌이'가 됐지만 자기 발명품을 직접 눈으로 볼 일은 없었다. 머리와 책과 워드 작업으로 무형(無形)의 성과만 내놓기 때문이다. 이랬던 김 박사가 작년 8월 처음으로 다른 길을 택했다. 머릿속 생각을 직접 살아 움직이는 시제품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이 첫 유형(有形) 발명품의 이름은 '자율형 사립 연구소'인 모두의 연구소(이하 모두연). 서울 강남역 근처의 건물 1개 층에 세미나실 3개, 하드웨어 작업공간, 로비, 휴게실을 꾸렸다. 학력·전공 불문하고 어떤 사람이든 관심 있는 주제를 탐구해 창업 기술을 개발하고 논문·특허 등 성과를 만드는 곳이다.

학위는 안 나오지만 교수 지시에 따라야 하는 대학원 연구실과 반대로 탐구 주제를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뚜렷한 '사업 아이템'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창업 지원 센터와 달리 호기심과 의욕만 있으면 아무리 쓸모없고 막연한 아이디어도 키워 준다. 대학원과 창업 보육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 박사는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생소한 콘셉트의 공간이고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도 없었다. 정부 지원을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해 순수하게 자비로 시작했다"고 웃었다.

이 황당한 아이디어에 사람들이 호응했다. 자기 계발에 목마른 대기업 연구원, 학교 수업에 만족 못 한 공대 학부생, 예비 창업가 등이 입소문만으로 모였다. 이런 모두연 '연구원'은 현재 150여명이나 된다.

각각 월 4만4천원 공간 이용료를 내고 모두연에서 1주에 한두 차례 모임을 한다. 연구 주제는 가상현실(VR), 인공지능 딥러닝, 자동운행 드론(무인기) 등 화제가 된 기술도 있고, 동네 범죄통계 분석과 레고 쌓기 같은 다소 '뜬금없는' 것들도 있다.

새로 파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자기가 랩짱(연구그룹 리더)이 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으면 된다. 다들 일과를 끝내고 모이는 '파트 타임' 연구원이지만 연구 노트를 만들고 논문 발표·서비스 개발 등 세부 목표를 정해 땀을 흘린다.

"사람은 관심이 있는 문제를 자발적으로 풀 때 신이 납니다. 반면 대학원에 가면 연구비 따려고 정해진 과제 하기 바쁘죠.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실제 가수가 누구인지 목소리 분석으로 알아맞히는 소프트웨어(SW)를 만들고 싶다고 합시다. 그러려면 복잡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고안해야 하는데 대다수 대학원에서는 '쓸모도 없는데 그걸 왜 하느냐'는 말만 듣겠죠. 기업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런 갈증을 풀어줄 대안 공간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김 박사는 디지털 신호 처리라는 세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부터 LG전자[066570]에서 휴대전화 연구개발(R&D) 일을 했다. 주변 소음을 모두 차단해 전화 받는 장소를 들키지 않는 '알리바이폰' 등이 당시 했던 개발 업무다.

틀에 갇힌 일에 시달리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2010년 사표를 썼고 이후 모두연 창립까지 5년 동안 특허 회사를 위한 발명가 일을 했다.

건강·IT·게임·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발명 아이디어를 정리하면서 타 영역을 두루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세상 모든 것을 자유롭게 연구한다는 모두연의 모토도 이때 생겼다.

김 박사는 소수의 엘리트를 시켜 위에서 던져준 문제를 경쟁적으로 푸는 R&D 방식에 고개를 젓는다.

자기 돈(공간사용료)을 내고 '내 연구'를 하려고 온 이들이 느리게라도 협업·상생하는 길이 장기적으로는 더 효과가 좋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박사는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는 리더는 소수지만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분위기만 조성되면 이에 맞춰 열심히 하는 이들"이라며 "몇몇 마니아가 씨앗이 되고 그 주변에 사람이 모이면서 '상향평준화'의 힘으로 창업 아이디어를 키우는 플랫폼(기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모두연은 지난 10일 오픈 1주년을 맞았다. 구성원의 십시일반만으로 그럭저럭 유지되어 온 공간이지만 앞으로는 모두연의 생각에 공감하는 기업의 지원도 찾아볼 계획이다.

"무엇보다 사람이죠. 150여명인 연구원을 2년차 때는 500명까지 늘리고 싶습니다." 김 박사가 덧붙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세상에 나온 첫 '발명품'은 그렇게 자라고 걷고 있었다.

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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