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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1년> ⑤ '법적으론 한국인인데' 무국적 신세 사할린 동포

송고시간2016-08-14 09:00

'국적판정 없이도 우리 국민' 판례에도 국적 취득 절차·기준 까다로워

학계·법조계 "국가가 나서서 이들의 국적회복 제도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지 어느덧 71년이 흘렀지만, 일제가 남긴 큰 상처인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후손 상당수가 무국적자 처지에 놓여 있다.

헌법과 국적법이 이들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고, 법원이 2년 전 한 후손에 대해 국적 판정 절차가 필요 없는 우리 국민이라고 인정한 판례도 나왔지만, 여전히 절차와 기준이 까다로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일제·옛소련 외면에 무국적…국적판정심사 까다롭고 오래 걸려 기피

관계 당국에 따르면 3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후손 중 상당수는 무국적 상태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법무부에 국적 판정 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일제가 이들의 부친을 사할린으로 끌고 가 노역 등 온갖 고초를 겪도록 하고는 패망 이후 아무런 조처 없이 철수한 데다, 이후 옛 소련마저 사할린 한인들에게 국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국적법상 대한민국 국적을 자연히 취득하려면 '출생 당시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어야 한다. 하지만 초기 사할린 한인들이 무국적자였기 때문에, 사할린 교포 2∼4세까지 대한민국 국적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적 판정 심사는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 데다 제출 서류 등 절차가 까다롭다. 사할린에 사는 이들이 우리나라에 머무르면서 심사를 기다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비교적 절차가 간편한 영주귀국을 신청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 경우 국적을 오롯이 인정받는 형식이 아니다.

특히 자녀는 장애가 있는 경우에만 데려올 수 있다. 이미 부친을 강제징용으로 잃은 이들이 우리나라에 돌아오려면 자녀는 러시아에 남겨둘 수밖에 없어 '생이별'을 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사할린 징용 피해자 후손들은 국내에 영주 귀국했다가도 자녀 곁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귀환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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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징용 피해자 후손, 국적 판정 절차 필요 없는 대한민국 국민"

법학계는 "강제징용 피해자 후손의 경우 헌법·국적법상 당연히 우리 국민인데 국적 판정 심사를 받아야만 국적을 부여받는 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법원은 2014년 6월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후손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적 판정 절차 필요 없이 헌법·국적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임이 인정된다'는 판례를 내놓았다.

당시 국가를 상대로 국적확인 소송을 냈던 김모(62·여) 씨는 부친과 모친이 모두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사실이 입증돼 2년에 걸친 소송 끝에 우리 국민으로 인정받았다.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박연욱 부장판사)는 "김 씨의 경우 헌법과 국적법에 따라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행정부가 국민으로 판정해야만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부장판사는 "사할린에서 평생 살아온 원고가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에 들어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요하며 국적 판정 절차를 밟는 것이 적절한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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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동포 특별법' 10년째 국회 표류…전문가들 "정부가 적극 나서야"

문제는 김 씨 판례가 나왔음에도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할린 교포들은 여전히 국적 판정 심사든, 개별 소송이든 국적을 취득하려면 오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할린 징용 피해자 후손의 국적 회복을 지원할 법안은 국회에서 장기 표류 중이다.

2005년 17대 국회 때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6개가 발의됐으나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관련 법은 상임위원회에 머무르다 폐기됐다.

학계는 정부가 러시아·중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자국민 보호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올해 6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원 학술지에 '재외동포들의 돌아올 권리에 대한 법적 자취'라는 논문을 발표한 최경옥 영산대 법률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국민의 '돌아올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을 수립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러시아와 외교협상을 통해 이중국적 인정 등을 논의하고, 국회는 '사할린 동포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이들이 국적을 회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4년 사할린 교포 김 씨의 소송을 도와 승소를 이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국가는 사할린 교포들의 국적 신청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나서서 실태를 파악하고 국적 회복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타의에 의해 국적을 잃은 국민이니 국가가 먼저 국적을 주고, 국내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재외국민으로 등록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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