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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10여년 음식 나눠온 독립투사 아들…마지막 소원은

송고시간2016-08-14 08:10

김정로 선생 아들 김성식씨 "내년에 아버지 유공자 신청할 것"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나를 자랑하려 하지 말고, 네가 나보다 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펼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팔순 아들은 십수 년째 어려운 이웃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서울 중구 방산시장에서 40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성식(82)씨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마다 혼자 지내거나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을 챙긴다.

2009년 10월부터 지금껏 12년간 이어오는 일이다.

방산시장 횡단보도에서 아침마다 깃발을 들고 안전을 책임지는 봉사도 10여년간 했다.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백범 김구 선생과 항일운동을 한 김정로(1914∼1958) 선생.

김정로 선생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광주고보 재학 시절이던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백범 김구가 있던 중국 상해임시정부와 용정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1935년 전북 전주에 독립운동 아지트로 '건지사'라는 절을 세우는 임무를 했다.

호적상 이름은 '김정규'지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돼라'는 의미에서 김구 선생이 '바를 정'에 '노나라 노'자를 붙여 '정로'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1943년 밀고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을 맞아 풀려났다. 2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정치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마흔넷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떴다.

김성식 씨는 7살이 돼서야 감옥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김씨는 "아버지는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며 "파란 죄수복을 입고 파란 천이 눈까지 덮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해방 후 아버지는 김구 선생을 거의 매일 만났다. 그는 "김구 선생이 어린 나에게 '이놈 아버지 닮아서 똘똘하게 생겼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아버지를 여읜 뒤 생계를 꾸리느라 바쁜 와중에도 독립운동에 나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이웃들에게 식사 대접을 할 때 한 번에 50인분을 준비하는데 힘은 들지만 '잘 먹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여든이 넘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소원은 나라에 몸 바친 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등록하는 일이다.

그는 "아버지가 평소 '내 이름을 팔아 잘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유공자 등록을 신청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내 나이가 많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다 보니 늦기 전에 아버지의 애국 활동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김씨는 아버지의 유품과 관련 기록을 모아 이르면 내년 유공자 등록을 신청할 계획이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난다"며 "지금껏 이웃을 섬기며 봉사하는 데 큰 용기와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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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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