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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후 지리산 일대서 1만여 의병 항일투쟁했다"

송고시간2016-08-14 06:00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 공개…'잊혀진 의병장' 박동의 창의대장 등, 일본군엔 '공포의 대상'

경남창의대 쌍계사 등 사찰 3곳에 주둔, 화승총·지장포 직접 제작

(하동=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박동의 창의대장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일단 습격 정보가 접수되면 일본군이 일본 사람들을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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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51) 소장은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영호남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박동의(1867~1908년) 경남창의대장과 경남창의대(倡義隊·경남창의군)의 항일투쟁 상황과 대원들의 생활상을 14일 상세히 공개했다.

박 창의대장은 당시 일본군과 경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정 소장은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박물관에 보관된 '진중일지'에 경남창의대와 창의대장의 활약상 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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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이 상부에 올린 보고서 중 하나에 '경남창의대가 설날 아침에 하동경찰서를 습격한다는 정보에 이곳에 사는 일본인 수 십 명을 인근 진주로 대피시켰다'라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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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이 작성한 '폭도에 관한 편책'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돼 있다.

이 기록에는 '박동의 창의대장은 1908년 3월 12일 김모 의병장 등과 함께 덕산에서 일본인이 숙박하는 집을 불태웠으며, 3월 26일 밤 11시 산청주재소(경찰서)를 습격하고 건물을 불태웠다'고 적혀 있다.

다음날에는 '단성군 신등면에 36명의 폭도(의병)가 총기를 휴대하고 나타났으며 수괴(의병장)는 박모(박동의)'라고 일본 경찰은 보고했다.

이외에도 경남창의대는 1908년 4월 16일 단성읍내 순사주재소를 습격해 건물과 서류를 불태웠고, 산청군 두량곡과 대원사 부근 등 일본군 수비대와 수십 차례 교전해 큰 피해를 줬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군에게 박 대장은 언제 어디서 나타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를 공포의 대상이자 건물 등을 불태운 '골칫거리'였다.

박 창의대장이 이끈 경남창의대는 1907년 7월 일제의 군대 해산령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뒤 군인 일부와 의병들이 결성한 전국 13도창의대(13도 창의군) 중 하나다.

애초 '교남창의대'란 이름으로 불렸고 박정빈 창의대장의 이름이 올라 있지만,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한 기록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정 소장은 "당시 전국 창의대 총대장인 이인영이 경상도지역이 빠진 데다 지인이 없어 평소 가까운 곳에 살며 친분 있는 함경도 목천군 박정빈 군수를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에 의병장 14명이 경남창의대를 만들었고 학식 있고 재력가인 박동의 창의대장을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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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소장이 국가기록원의 문건 '융희 4년 폭도 수괴 조사표'에서 이런 내용을 발굴하고 공개한 바 있다.

박 창의대장은 1908년 10월 산청군 덕산에 주둔하던 중 일본군 수비대의 습격을 받아 체포된 뒤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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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을 벌벌 떨게 한 장본인이지만 박 창의대장의 항일 투쟁 기간이 너무 짧아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고 그래선지 '잊혀진 의병장'으로도 알려졌다고 정 소장은 소개했다.

정 소장의 서훈 신청으로 정부는 2011년 박 창의대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 소장이 이날 공개한 경남창의대 소속 항일투사 1천여 명의 생활은 '충만한 애국정신'과 '유비무환' 그 자체였다.

박 창의대장은 하동 쌍계사와 구례 칠불사, 산청 법계사 등 지리산 일대 3개 사찰을 주요 근거지로 삼았다.

3곳으로 나눈 것은 게릴라전에 용이하고 잠복하면서 숙식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군대 소속이던 군인들이 합류한 덕분에 이들은 '화승총'과 지장포를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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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은 장전하고 심지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 필요한 탓에 2인 1조로 사용하는 장총이다.

부족한 무기는 군자금으로 사들였다.

당시 의병들은 미국과 프랑스 등지의 선교사를 통해 단총(권총) 등 무기를 사들였고, 습격 때 일본군 무기를 노획하기도 했다고 정 소장은 전했다.

일부는 죽창과 칼을 사용하기도 했다.

'소모장'이란 불리는 의병장은 맡은 지역을 돌면서 청년을 상대로 시국 강연을 하고 격문을 배포해 의병을 모집했다.

격문은 '국태민안 해야 하는데 사직의 위태로움이 조석에 직면하였다…(중략) 애국심을 가진 선비나 뜻 있는 자 나서 국운 중흥과 충효의 마음을 협력하길 바란다.…(하략)'란 내용이다.

이렇게 모집한 의병들은 전직 군관 출신인 '교련관'이란 의병장이 훈련했다.

대부분 1895년 고종 32년 지방수비 위해 설치한 최초의 근대적 군대인 진위대(鎭衛隊) 소속인 이들은 사격훈련과 게릴라전을 훈련했다.

당시 의병들은 쉽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겉감은 황색, 안감은 흑색으로 만든 옷을 입었고, 남과 밤에 돌려 입으며 일본군의 감시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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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들은 경찰서 등의 습격계획을 세우고 일본군을 정탐하며 배치 상황 등을 상시 파악했다.

1천여 명이나 되는 의병 가운데서는 극히 드물지만, 군자금을 훔쳐 달아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 소장은 일본 경찰이 '군자금을 갖고 도망하거나 의병을 빙자해 겁탈하고 강도질을 한 의병들이 동료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쓴 보고서도 있었다고 했다.

경남창의대 군율이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 진중일지에 실린 경남창의대 편제 중 직책도 흥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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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아래는 '부장 겸 선봉장'을 뒀고, 그 아래 부대의 왼편을 앞서 이끄는 '좌선봉'이다.

'중군장'은 부대 중간에서 대장을 호위한다.

'중대장' 아래 계급인 '후군장'은 부대 후미를 책임지는 지휘관이다.

수경지를 지키는 지역 대장 '파수장'을 뒀고, 오늘날 군기반장 격인 '영솔장'을 배치했다.

영솔장은 첩자를 색출하고 부녀자 겁탈범 등 범죄자를 심판했다.

'향도관'은 길 안내, '무기계'는 무기·화약 구매, '책사'는 작전 계획 등 임무를 각각 맡았다.

정 소장은 을사늑약 이후인 1907년부터 1915년까지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운 항일투사 등은 모두 1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항일투사 3천 명 이상이 이곳에서 순국했으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정 소장은 2004년 국가기록원을 뒤져 지리산 독립군 200명의 기록을 찾았고 기록이 남은 27명의 공적서를 만들어 정부에 서훈을 신청, 16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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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 소장은 국가기록원과 LH 토지주택박물관, 개인적으로 입수한 자료 등에서 600여 명의 항일독립투사를 찾았고 이 중 130명이 정부 서훈을 받았다.

독립투사 대부분이 청년 시절에 의병에 가담했고, 유족들이 거의 없어 이들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고 이 탓에 투사를 찾고도 정부 서훈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 소장은 안타까워했다.

정 소장은 정부 서훈을 받았거나 받지 못한 독립투사와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독립투사를 추모하려고 2008년 악양면 정서리 취간림에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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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 등으로 세운 기념탑은 취간림 내 6천여㎡에 7.5m 높이 원석 위에 조각했고, 전체 바닥은 화강석으로 꾸몄다.

박동의 경남창의대장, 전남 담양 출신 의병장 고광순, 경남 함양 출신 문태서, 충남 회덕 출신 김동신 의병장을 비롯해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3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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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ch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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