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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로 칼럼> 전기요금누진제가 본래 목표에 충실하려면

송고시간2016-08-12 07:49

<이병로 칼럼> 전기요금누진제가 본래 목표에 충실하려면 - 2

(서울=연합뉴스) 누진세는 영어로 '프로그레시브 택스(progressive tax)'라고 한다. 프로그레시브의 사전적 의미는 "점진적인", 즉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깐 누진세는 말 그대로 누적적으로 세금을 높여가는 과세방식이다. 예컨대 100원의 소득이 있을 때 10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200원의 소득에 대해서는 20원이 아니라 25원 혹은 30원의 세금을 매긴다면 그건 누진세가 적용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누진 형태로 과세하는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지나친 부의 편중을 사후 교정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누진제가 거론되기는 했으나, `돈 잘 버는 것이 죄냐'는 원초적 반발로 인해 지금처럼 세계 각국의 보편적 과세제도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중에 제1,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이 없었다면 아마도 누진제는 정착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경제적 민주주의라는 전제 없이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게 그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누진세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고, 효과에 부정적인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버는 일은 자본주의의 첫 번째 동력인데, 남다른 노력의 결과물에 대해 오히려 불이익을 준다는 건 치명적 모순이라고 말한다. 누진 세제는 더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꺾는 결정적인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이다. 어떤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게 과연 가능한지부터 따지면 논의는 복잡해지니 이 정도만 짚으련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누진세제의 부작용이 '누진 요금제'라는 장치에서는 핵심 기능부에 들어선 일이다. 누진 요금제의 목적은 '많이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요금을 내도록 해서' 소비의욕을 억누르는 데 있다. 누진세와 누진 요금제는 작동방식은 같지만, 내용으로는 정반대의 취지가 있다. 마치 보톡스의 치명적인 신경독이 미용 행위에서는 핵심 시술로 등장한 모양이라고 할까. 누진 요금제는 많이 소비하는 쪽에 요금을 많이 매겨서, 저소득층의 요금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들어있으니 소득불균형을 간접적으로 바로 잡는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교정효과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다.

요즘 뜨거운 쟁점인 '가정용 전기 누진 요금제'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이유에는 과잉이라는 측면때문이기도 하다. 한번 가상 실험을 해보자.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라 소득세에 누진 세금을 매겨보는 거다. 아직 노령층 일부에서는 전기요금을 전기세로 부르고 있으니 흥미롭기도 하다. 누진 요금제 시스템 그대로 소득누진세를 부과하면 최저 기준의 소득 계층보다 10배의 소득을 올린 사람이 최고 30배의 세금을 내야 한다. 기본요금도 누진이 되고 여기에 전력량도 다시 누진이 되는 구조가 한국전력의 폭탄성 가정용 전기 누진 요금제이기 때문이다.

종합소득세 누진제가 이렇게 돼 있었다면 벌써 큰 변고가 생겼을 것이다. 총 5단계 과세표준에서 중간인 3단계(4천600만 원-8천800만 원) 세율은 24%이고, 5단계(1억5천만 원 이상)는 38%다. 그러나 5단계의 경우 소득 전체에 38%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전 단계인 4단계를 넘는 액수에 대해서만 38%를 적용한다. 그러니까 1억5천만 원이 넘는 소득이라고 해도 1,2,3,4단계에 해당하는 소득에서는 해당 구간의 소득세율을 적용하고 마지막 5단계는 1억5천만 원을 넘는 액수만큼만 최대 세율을 적용하는 구조다. 초과누진세율이라는 방식이다. 최저수준의 종합소득세율은 6%이고 최고 소득세 과세 비율은 6배가 넘지만, 실제 부담은 이보다 훨씬 적은 이유다.

이런 실험을 해 본 까닭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얼마나 '징벌적' 성격이 강한지 보기 위해서다. 소득과 요금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누진제라는 시스템 차원에서만 보면 한쪽은 너무 부과체계가 과중하다. 혹시 소비억제 외에 재정적 고려같은 요소가 강하게 개입하지는 않았나 의심이 든다. 전기 누진요금제의 핵심 명분은 뭐니뭐니해도 과소비 억제일 수밖에 없다. 늦었지만 전기요금체제가 개편될 모양인데, 앞서가지는 못해도 너무 뒤떨어지는 방안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가정용 전기 소비량은 전체의 13%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만일 사용량이 50%나 폭증한다 해도 전체 전력 소비량 내 소비 증가 폭은 6.5% 정도다. 스마트하다면 해법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에어컨은 하루 몇 시간만 틀자는 기기가 아니라 찜통더위 속에서 일정 온도에 맞춰놓고 장시간 가동하자는 가전제품이다. <논설위원>

inn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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