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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피폭돼 3대가 고통…70년 세월 외면당했다"

송고시간2016-08-12 06:01

히로시마서 피폭 이일갑 씨, 실태조사로 '피해 대물림' 확인 요구

(합천=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원자폭탄이 이렇게 무서운 건 줄 몰랐어. 후손한테도 영향이 간다더니 우리 집이 딱 그래. 낭패야, 낭패."

3대 째 원폭 피해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이일갑(77·여·경남 합천) 씨는 1945년 8월 6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에서 피폭되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부모님은 멀리 떨어진 밭으로 일하러 가 화를 면했지만 당시 6살 난 이 씨와 두 여동생을 지켜주던 집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둘째 동생은 집 앞에 서있다가 숯덩어리처럼 타버렸고, 생후 3개월이던 막내는 잔재 틈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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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나도 팔이 데이고 여기 저기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우리 가족 모두 목숨은 건졌다"며 "그 날 거리에 사람들이 다 죽어있다시피 한 걸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라고 회상했다.

이 씨는 일본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서 그 해 11월 부모님의 고향인 합천으로 왔다.

광복을 맞은 고국에 정착한 안도감도 잠시, 이 씨는 온몸에서 시작된 통증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됐다.

현재 원폭 피해자로 등록된 이 씨는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계속됐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 질환을 심하게 겪었다"며 "갑자기 숨통이 막히고 의식을 잃어 생사의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10년 전엔 심장 판막 수술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이 씨를 더욱 절망스럽게 한 건 자식 역시 여러 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초 결혼해 2남 2녀를 둔 이 씨 자녀 가운데 장남과 막내딸은 건강이 좋지 않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특히 상태가 나쁜 건 이 씨와 함께 사는 장남(54)이다. 이 씨 장남은 고등학생 무렵부터 몸에 이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괜찮던 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곳곳에 통증을 느껴 줄곧 병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며 "피부 질환과 전신 탈모 증세를 겪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2002년 고 이형률(1970∼2005)씨가 자신을 '원폭 2세 피해자'라고 밝히고 후손 피해 문제를 공론화할 때 이 씨 장남은 가장 먼저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회원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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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 역시 2년 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생식기 피부 질환을 앓고 있다"며 "약을 먹을 때는 낫나 싶더니 안 바르면 금방 다시 덧나 좀체 낫지를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폭이) 2세뿐만 아니라 3세까지 안 좋은 영향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며 "그래도 아직 건강히 지내는 편인 손자가 아프다고 하면 큰 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덜컥 겁부터 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본인뿐만 아니라 아들 역시 거동이 불편해 일을 하는 게 힘든 상황에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손자를 제대로 보살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이 씨는 "나도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아들도 마찬가지"라며 "아들이 고추를 따거나 농사일을 거들어 근근히 생활을 꾸렸지만 지금은 그런 일도 만만치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1945년 8월의 원폭이 해방의 기쁨을 준 과거 문제지만 이 씨 집안 3대에겐 여전히 진행형으로 삶을 고통스럽게 짓누르고 있다.

이 씨는 한국인 피폭자들의 고통이 70년이 지나도록 한·일 양국 정부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이 씨의 얼굴에는 일제시대 생계를 잇기 위해 우리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해방과 귀국 후에도 평생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비통한 현실을 바로잡아달라는 간절함이 배어있었다.

그는 "나 혼자 고통을 겪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아들에 손자까지 이러니 못살겠다"며 2세 등 후손에 대한 지원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신신당부했다.

또 "원폭 피해가 대물림 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게 실태조사라도 정확하게, 빨리 해달라"고 강조했다.

k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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