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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10억엔·소녀상 연계땐 이사장직 사퇴"

송고시간2016-08-07 08:00

'화해·치유재단' 출범후 첫 인터뷰…"할머니들 많이 지쳐 이제 매듭지어야"

"지원 대상은 모두 245명"…"기록 남겨 후세 교훈 삼아야"

인터뷰 하는 김태현 이사장
인터뷰 하는 김태현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인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이 5일 서울 중구 순화동 재단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8.7
ksu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녀상과 10억엔 출연은 절대 병행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일본이 소녀상 문제를 들고나온다면 나는 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김태현(66) 이사장은 7일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에서 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배상금 출연과 소녀상 철거는 서로 연계할 수 없는 완전한 별개의 문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재단 출범 이후 김 이사장이 언론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양국 간 중요한 외교적 합의를 파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이번에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일 합의에 반대하는 피해자들도 계속 만나면서 끝까지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재단 출범일에 겪은 캡사이신 최루액 공격에 대해서는 "격렬한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문답.

-- 재단 이사장직을 맡게 된 배경은.

▲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인 소명도 느꼈고, 학자로서 내 전공이 33년간 여성·노인복지였기 때문에 이번 일이 내 전공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너무나 큰 상처와 폭력에 시달려왔던 분들이다. 지금까지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픔과 상처 때문에 자녀에게 떳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그들을 돕고 싶었다.

-- 역사적인 소명이란 어떤 것인가.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인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이 5일 서울 중구 순화동 재단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8.7
ksujin@yna.co.kr

▲ 위안부 문제는 23∼25년간 이어져 왔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에 처음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1993년에 위안부 피해자 지원법이 만들어지면서 피해자들이 세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일본에 배상하라, 사과하라고 울부짖었지만, 이 문제가 풀리지 않았고 할머니들의 한(恨)이 쌓여왔다. 그런데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베 총리가 이번에 사과하고 반성도 표현했다. 또 일본 정부 출연으로 10억 엔을 주기로 했다. 이제는 역사적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소명이다.

-- 한·일 합의에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담겨 있지 않다는 비판이 여전한데.

▲ 나도 처음엔 할머니들이 한·일 합의에 반대하고 지원받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막상 할머니들을 만나보니 의외로 대다수가 많이 지쳐있었다. '이제는 끝냈으면 좋겠다. 우리도 지쳤다. 성엔 안 차지만 아베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배상금도 성에 안 차지만 이 정도로 받아들이겠다'라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정도 합의를 끌어낸 것에 대해 정부에 감사하다는 얘기도 했다. 전국을 다니며 할머니 37명을 만났고 그중 80%가 재단 지원에 동의했다.

-- 피해자들의 끔찍한 고통과 상처에 비하면 지원 액수가 너무 적다는 의견도 많은데.

▲ 나도 처음엔 10억 엔이 작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할머니들이 그러시더라. 지금까지의 일본 행태를 보면 이번 합의를 깬다고 해도 그 이상은 못 받을 거라고, 그 지난한 세월을 또 보내야 한다고. 협상이란 것은 최선의 득을 끌어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지 않나. 최선이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성에 안 차지만 다시 23년을 돌이킬 수 없으니 여기서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 일본이 더 많은 반성을 할 기회가 올 거라고 본다. 어떤 할머니는 아픈 손녀딸의 신장 이식 수술에 3천만 원이 필요하다면서, 그 돈을 보태주면 자식들한테 미안했던 마음이 줄어들 것 같아서 한이 풀릴 것 같다고 하더라.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을 풀고 마음을 치유하도록 해야 한다.

-- 일본 언론에서 우익 정치인들이 위안부 소녀상을 문제 삼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 우리가 이미 선을 그었고, 이걸 믿어야 한다. 소녀상 때문에 10억 엔이 안 온다거나 돈을 받고 우리 정부가 소녀상을 연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이 소녀상을 문제 삼아 10억 엔을 안 준다면 합의를 파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은 세계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일본이 소녀상 문제를 들고나온다면 나는 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을 것이고 아마 다른 이사들도 뜻을 같이할 것이다.

-- 10억 엔을 받아 지원을 끝내는 데 얼마나 걸릴까.

▲ 그리 간단하진 않다. 지원 방식은 피해자들의 의견을 더 들을 필요가 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생존 피해자들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운영하는 쉼터에 있는 3명과 '나눔의집'에 있는 3명, 중국과 일본에 각각 있는 2명 등이다. 합의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속 만남을 시도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 이미 뵈었던 분들께도 다시 지원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는 상담과 치유 활동도 해야 한다. 그런 일들이 모두 마무리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지금 예상하기 어렵다.

-- 구체적인 지원 계획은.

답하는 김태현 이사장
답하는 김태현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인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이 5일 서울 중구 순화동 재단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8.7
ksujin@yna.co.kr

▲ 한·일 합의 시점 기준 생존자인 46명을 포함해 이미 사망한 분들까지 정부에 등록된 238명과 대일항쟁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한 7명까지 총 245명을 대상으로 지원한다. 생존자와 사망자에 차등을 둘지 여부 등 개인별 지원 액수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또 직접 지원 외에 피해자 위령탑을 세우는 등 기념사업을 재단이 할 것인지 아니면 재단이 골격을 잡고 여성가족부가 지속 사업으로 해나가게 할 것인지도 계속 논의해야 한다.

-- 위안부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재단이 나서서 위안부 기록 작업을 지원할 계획은 없나.

▲ 기록을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도록 교훈을 남기려면 역사적 사실을 기록, 보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료를 잘 보관하고 전시해 세계 사람들도 보게 해야 한다. 재단이 예산 문제 등으로 그 일을 직접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제안을 구체적으로 하고 문을 닫을 것이다.

-- 재단 운영비를 한국 정부가 부담하게 된 배경은.

▲ 원래 10억 엔을 재단 운영비로 일부 쓸 생각도 했는데, 할머니들을 만나보고 나니까 그렇게 쓰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이 "10억 엔은 우리를 위해 다 쓸 거죠?"라고 묻더라. 이사들이 그 말을 듣고 다 할머니들을 위해 쓰자고 의견을 모아서 운영비를 정부 예산으로 요청한 상태다. 원래 사무처장을 한 명 두려고 했는데, 예산이 아직 없어 여가부와 외교부 공무원 한 명씩 파견근무를 나와 있다.

-- 재단 이사들의 활동비는.

▲ 나를 포함해 모든 이사가 활동비 없이 순수하게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직을 맡았다. 이사진 회의 때 교통비도 못 주고 있다.

-- 이사를 추가할 계획은.

▲ 자문회의 단계에서 역사학자 한 명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일정으로 외국에 나가게 되는 바람에 현재 이사진에 역사학자가 없다. 그래서 역사학자 한 명을 추가하고 여성학자도 한 명 위촉하려고 한다. 재단 출범 기자회견 때 피해자 단체 관련된 분들도 우리 목적에 찬성하는 분이면 언제든 이사로 모실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단체 분들은 결국 찬동을 안 했다.

-- 재단 출범일에 캡사이신 공격을 받고 많이 놀랐을 텐데, 위축되지는 않았나.

▲ 사실 당시 눈이 너무 아파서 실명하는 줄 알았다. 눈 건강이 원래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치료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침묵하는 다수가 일하고 그게 아닌 것이 정의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두 집단 간의 갈등과 소란함을 겪어야 새로운 사회, 질서가 온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의사 표현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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