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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모르겠고 팔고 보자'…구명조끼 입고 익사할 판

송고시간2016-07-11 16:57

중국산 불량 구명조끼 '국산' 속여 납품·구명뗏목 부실검사 업체 적발

울산해경, 업체대표·직원 10명 검거…관리기관까지 수사 확대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중국산 불량 구명조끼를 국내산으로 속여 납품하고, 구명뗏목 검사 안 하고 검사료만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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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구난장비를 불량으로 납품·검사한 업체대표와 직원 등 10명이 무더기로 울산해경에 붙잡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 안전에 대해 강화된 정부 감독과 높아진 사회적 관심이 무색하게도 이번에 확인된 불법과 부실 사례는 어처구니가 없는 정도다.

해경은 선박 구난장비 관련 업계와 정부의 관리감독 전반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비용 싸니까" 제조 대신 수입…익사 위험 큰 구명조끼에 생명 맡겨야

구명조끼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씨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대신 중국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비용이 25∼30%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구명조끼와 방수복을 들여오면 'MADE IN CHINA'라고 적힌 원산지 표시부터 잘라내도록 했다.

대신 자신의 업체가 직접 생산한 것처럼 허위 제품보증서를 첨부, 국산으로 둔갑시켜 국내 조선업체 7곳에 납품했다.

2012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8천488벌의 구명조끼와 717벌의 방수복을 납품, 3억4천만원을 챙겼다.

이들 제품은 건조된 선박에 비상용 구난장비로 비치됐다.

문제는 단순히 중국산을 국산으로 바꾼 것뿐 아니라, 구명조끼 기능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해경이 한국원사직물(FITI)시험연구원에 의뢰해 안전성 검사를 한 결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물에 빠졌을 때 몸의 기울기, 얼굴과 수면까지의 거리, 뒤집혔을 때 되돌아오는 복원력 등이 모두 익사 위험이 큰 불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이씨 업체가 납품한 8천500벌가량의 구명조끼는 현재 선박 140여 척에 나눠 실려 전 세계 대양을 누비고 있다.

만에 하나 이들 선박이 사고를 당하면 승무원들은 불량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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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력·시간 없으니 생략' 검사도 안 하고 합격증서 남발

이씨가 운영하는 구명뗏목 검사업체도 기발하고 뻔뻔한 수법으로 돈을 챙겼다.

해당 업체는 2008년 정부로부터 구명뗏목 검사와 정비 업무를 위임받은 지정 정비사업장이다. 검사 시설이나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인력 등 필요한 기준을 갖췄기에 지정 과정에 문제는 없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이 업체는 그러나 필수검사는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검사료를 챙기고 합격증서를 발행했다.

원래 구명뗏목을 검사하려면 뗏목을 선박에서 분리해 검사장으로 옮긴 뒤 비상시 뗏목이 자동으로 펼쳐지도록 하는 가스 압력이나 팽창 정도를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최소 2시간∼3시간이 걸린다.

업체는 시간, 비용, 인력을 아끼고자 필수검사를 생략한 채 구명뗏목에 갖춰져야 할 의장품이나 비품만 확인하고 검사를 끝냈다.

때로는 구명뗏목 4개 중 1개만 검사하면서 사진을 4개 각도에서 촬영, 마치 각기 다른 4개를 모두 검사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도 했다.

그러면서 검사 합격증서는 전년도 증서에 적힌 정보를 보고 베껴 발행했다.

이런 수법으로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구명뗏목 343개의 검사료 3억2천900만원을 챙겼다.

불량 구명조끼처럼 사고가 나도 제대로 펴질지 알 수 없는 구명뗏목 300여 개도 선박 100여 척에 실려 바다를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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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업체, 정부 관리도 부실…경찰 "모두 수사대상"

이씨 업체가 저지른 불법은 더 있다.

구명뗏목 정비업체로 선정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선박 관리업체 직원 임모(43)씨에게 승용차 2대(6천500만원 상당)를 금품으로 제공했다.

이를 받은 임씨도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험이 부족한 수습사원에게 안전장구도 지급하지 않은 채 구명뗏목 철거 등 위험한 작업을 맡기기도 했다.

5월 12일 이씨 업체 소속 직원 김모(26)씨는 울산신항에 정박한 1만t급 화학제품 운반선에서 구명뗏목을 내리는 작업을 하다가 7∼8m 아래 작업선 갑판으로 추락,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문제는 이런 불법과 부실이 관련 업계와 관리감독 과정 전반에 만연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해경은 국내 유력한 기관이 품질을 승인한 구명조끼 중에도 불량이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다른 업체의 구명조끼 불법 납품뿐 아니라, 승인기관의 묵인이나 공모까지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해양수산부가 연간 1회 이상 구명뗏목 지정 정비사업장을 방문해 지도·점검하도록 한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서도 해경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정비사업장을 방문하면 부실한 시설과 업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아직 아무런 적발 전력이 없다는 점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해경은 구명조끼 납품 업체와 승인기관,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 등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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