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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 수백년 묵은 고문서 지켜온 맏며느리들

송고시간2016-07-11 16:20

한중연 '한국 고문헌 명가의 날' 행사


한중연 '한국 고문헌 명가의 날' 행사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고투로 된 한글이라 읽기가 힘들었어. 자꾸 읽으니 내용이 이해되더라고. 한산이씨가 참으로 고단하면서도 강인한 삶을 살았다는 게 느껴졌어."

권보남(82) 여사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진주류씨 경성당(竟成堂) 종택으로 시집가던 날 시어머니가 300여 년 전 한글로 적힌 '고행록'을 안방 벽장에서 꺼내 건네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종가 며느리는 고행록을 필사하고 틈틈이 읽어 고난에 굴하지 않는 집안의 정체성을 익히는 게 전통이었다.

'고행록'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류명천(1633∼1705)의 부인 한산이씨(1659∼1727)가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씨는 정쟁에 휘말린 남편을 따라 유배지를 떠돌다가 47세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보다 앞서 20대 때는 딸과 아들을 잃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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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환갑이 넘어 쓴 고행록에 "돌이켜 생각하니 세상만사 다 뜬구름같고 서산으로 지는 해와 같노라…무슨 죄벌로 육십년 되도록 이토록 서러우며 괴로운가? 한탄하며 원망하노라"라고 적었다.

권 여사는 시부모가 돌아가신 뒤 고행록뿐만 아니라 사랑채에 있던 고문서와 그림들도 수습해 때때로 바람을 쏘이며 소중히 보관했다. 고행록을 비롯해 경성당 종가가 200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한 옛 문서와 그림 등은 1천616점이나 된다. 정수환 한중연 책임연구원은 "기탁 결정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권 여사의 남편이 하셨지만 고문서 보관에는 권 여사의 보이지 않는 정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중연은 오는 14일 권 여사 등 한국학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기탁한 문중 관계자 120명을 초청해 제2회 '한국 고문헌 명가의 날' 행사를 연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기록문화유산 보존·관리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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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특히 권 여사처럼 종가의 안주인으로서 고문서를 주도해 지켜온 종부(宗婦)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반남박씨 서계 종가 김인순 여사, 초계정씨 동계 종가 유성규 여사 등이 고문서 보존을 주제로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한중연은 행사에서 안숙선(67) 명창을 '명예종부'로 위촉한다. 안 명창의 본가인 전북 남원의 순흥안씨 사제당 종가와 후손가는 2010년 고문서 837점을 기증한 바 있다.

한중연은 "안숙선 선생은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일생을 문화융성과 후학양성에 매진해 전통문화 계승에 바람직한 자취를 남겼다. 한중연이 발굴하고자 하는 이 시대 종부상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조용헌 원광대 교수가 '한국의 명가, 그 빛나는 전통'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한중연 한국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의 종가에 대한 기억' 등을 발표한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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