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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 "공무원에 밥 사주지 마라"

송고시간2016-07-05 09:17

창립 25년 만에 '토종' 국제구호단체 신화 만들고 일선서 물러난 '봉사단체 대부'

1997년 방북때 김일성 동상 참배 끝까지 거부…"NGO 생명은 투명성과 지속가능성"

<인터뷰>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 "공무원에 밥 사주지 마라" - 2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대한적십자사, 한국컴패션, 기아대책, 세이브더칠드런.

2014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회비와 기부금을 가장 많이 모은 비영리 공익단체 9개의 순위다. 이 가운데 순수 민간단체이자 '토종'인 단체는 굿네이버스가 유일하다.

91년 '한국이웃사랑회'(Good Neighbors)란 이름으로 출발한 굿네이버스는 이듬해 방글라데시 구호사업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2003년 남북 직항로를 통해 젖소 30마리를 북한에 지원하고 2005년 '100원의 기적'이란 이름의 기부 캠페인을 벌이는 등 활발한 국내외 활동을 펼쳐 이제는 한·미·일 누적 회원 수 100만 명과 35개국 211개 사업장을 거느린 글로벌 국제구호개발단체로 성장했다.

굿네이버스의 가치는 유엔이 먼저 알아봤다. 96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NGO 최고 지위인 '포괄적 협의지위'를 국내 단체로는 처음 받은 데 이어 2007년에는 보편적 초등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s)상에 뽑혔다.

25년간 굿네이버스를 이끌며 '국제구호운동의 선구자'이자 '봉사단체의 대부'로 불려온 이일하(69) 씨가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이사장으로 물러앉았다. 굿네이버스는 지난달 22일과 27일 각각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와 사단법인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 이사회를 열어 1일자로 양진옥 사무총장을 신임 회장에 선임하고 이일하 회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4일 서울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일하 이사장은 "조직의 혁신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으나 내 인생은 굿네이버스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며 여전히 뜨거운 의욕을 내비쳤다.

충남 부여 출생인 이 이사장은 연세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숭실대와 미국 이스턴대 대학원에서 각각 사회복지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성남사회복지관장과 한국선명회(현 월드비전) 개발국장을 거쳐 굿네이버스를 창설했고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장, 한국아동단체협의회 부회장,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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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25년간 키워온 굿네이버스의 회장에서 물러났으니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 인생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도전을 마감하는 시간이어서 만감이 교차한다. 무거운 짐을 벗어 시원하면서도 내 나름대로 역사적 족적을 남긴 것 같아 뿌듯하다.

-- 언제부터 은퇴를 생각했는가.

▲ 9년 전 환갑을 앞두고 결심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직원 가운데 회장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후계자를 물색했다. 올 3월 정기총회 때 물러나려고 했으나 5월 말 경주 유엔NGO콘퍼런스의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정해진 데다 지난달 말 서울 세계사회복지사대회의 기조강연을 맡아 미뤘다.

-- 굿네이버스를 이끌어오는 동안 가장 안타까웠던 일과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하나씩 꼽는다면.

▲ 94년 르완다 내전 때 구호팀을 이끌고 난민촌 현장을 다녔다. 인구의 절반이 콩고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하루에 5천 명씩 콜레라로 죽어가는 참상을 목격했다. 나는 월남전에 참전해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잃기도 했는데, 그때 겪은 광경보다 더 참혹했다. 그래도 이 가운데 하루에 200명씩 목숨을 살리는 현장에 10일간 함께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97년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이자 민간단체 수장으로는 최초로 평양 땅을 밟았을 때였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인도적 지원을 목적으로 남북간의 다리를 놓았다는 점이 기뻤다. 시민이자 종교인으로서 김일성 동상에 절하라는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것도 잊지 못할 일이다.

-- 목사가 된 계기와 함께 목회 활동 대신 봉사단체를 만들겠다고 나선 까닭이 궁금하다.

▲ 친가로는 3대, 외가로는 4대째 목사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내가 목사가 되길 원하셨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2년간 봉사단체에서 경험을 쌓고 미국 유학을 갈 생각이었으나 경기도 성남시의 복지관장을 맡으며 인생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빈민을 위한 교회를 세웠고, 목사 안수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목회 대신 봉사단체에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 우리나라는 민간 기부에 관한 한 세계적인 모범국가다.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원래 정이 많고 사람을 잘 믿어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어떻게 가치 있게 살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6·25 때 우리나라를 도우려고 들어온 구호단체들이 기부와 봉사 메커니즘을 만든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 민간단체의 모금 실적이 매우 저조하다.

-- 굿네이버스는 북한 돕기에도 앞장서왔는데 지금은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돼 있다.

▲ 나는 평양을 120차례나 다녀왔다. 처음 북한 땅을 밟았을 때 품은 사명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지금도 재외동포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고 있다. 가늘게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신뢰의 끈이 소중하게 쓰일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갈등이 극심한 데다 급격한 다문화사회 이행에 따른 갈등도 우려된다.

▲ 굿네이버스를 만들며 핵심 가치와 문화로 인격 존중과 자율을 내세웠다. 최근에는 겸손과 관용 두 가지를 추가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겸손과 관용의 태도로 대하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지구촌 인류가 서로에게 '좋은 이웃'(Good Neighbor)이 돼야 한다. 최근 들어 양극화 현상이 심한데, 이를 해소하려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나눔의 가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돈이 없으면 시간이나 노력을 나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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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국제구호개발단체나 봉사단체가 더욱 성장하려면 어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법에 따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업의 돈이 다 몰리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현 제도 아래서라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작은 NGO들을 육성해주면 좋겠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NGO들을 육성하려면 종사자의 인건비를 지원해야 한다. 기업도 사업 프로그램에만 지원하려고 하니 종사자들의 처우가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처럼 회비와 기부금이 1천억 원이 넘는 단체는 10%만 경상비에 써도 100억여 원에 이른다. 그러나 작은 NGO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단체의 생명인 투명성이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봉사단체라고 해서 사명감과 열정에만 기댈 수는 없다.

-- NGO들이 스스로 개선할 대목이 있다면.

▲ 어느 지역에서 위탁사업을 신청했다가 해마다 떨어졌다. 나중에 들으니 담당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서라고 하더라. 그래도 밥 사주면서 사업권 딸 생각은 일절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돈은 부정한 돈이다. 후원자들에게 내역을 그대로 보고해야 하는데 공무원 밥 사준 것을 어떻게 보고할 건가. 대신 비용을 최소화하고 사업을 효율화하는 데 더욱 몰두해야 한다. 직원들에게도 물건 값을 잘 깎아야 하고 알뜰하게 살림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대표의 연봉이 직원 초봉의 3배를 넘지 않도록 했다. 그래야 후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 앞으로의 개인적 계획은 무엇인가.

▲ 회장 자리는 떠났어도 나는 굿네이버스와 늘 함께 갈 것이다. 우선 굿네이버스 미국법인의 일을 보면서 대북 지원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연말까지 임기가 남아 있는 한국NPO공동회의 이사장과 국민대통합위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 등은 당분간 유지할 것이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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