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한 사물에 투영된 삶…은희경 소설집 '중국식 룰렛'
송고시간2016-07-01 07:05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린 중견 작가 은희경(57)이 새 소설집 '중국식 룰렛'(창비)을 펴냈다.
2014년 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이후 2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책에는 그가 지난 8년여간 쓴 단편소설 6편을 엮었다.
수록작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사물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다. 술, 수첩, 수트(옷), 신발, 가방, 사진, 책 등이 각 소설의 모티프로 등장한다.
특히 술이나 가방 같은 물건은 여러 작품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모티프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소설집을 관통하는 정서는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과 상실, 두려움의 정서다.
이는 표제작이자 첫 수록작인 '중국식 룰렛'에서부터 짙게 드러난다.
시한부 인생을 남겨둔 위스키 바 주인이 어느 날 밤 주인공을 포함한 세 명의 남자를 불러 모은다. 이 바의 주인은 늘 세 개의 잔에 각기 다른 종류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따라놓고 손님이 하나를 골라 마시게 한다. 같은 가격에 비싸고 좋은 술을 고를지, 싸고 질 낮은 술을 마실지는 순전히 각자의 운에 달렸다.
손님의 그날 운을 짓궂게 시험하는 주인 앞에서 세 남자는 각자의 인생을 거쳐간 행운과 불운에 대해 털어놓는다. 듣다 보면 이들 중 누가 더 많은 행운 또는 불운을 가졌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향기롭고 감미로운 싱글몰트 위스키는 이들 각자의 불운과 고독을 그나마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소설 '장미의 왕자'에서는 멋진 수트를 입은 남자를 동경하는 초라한 여주인공의 삶을 대비시킨다. 주인공은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난 장미왕자가 고약한 마법에 걸려 울타리를 벗어나면 추하게 변한다는 동화를 떠올리며 세상의 모든 추한 사람들이 그런 마법에 걸린 거라고 생각한다. 수첩과 수트, 가방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주인공의 적막하고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가슴을 가장 먹먹하게 하는 이야기인 '대용품'은 누군가의 불운이 나의 행운으로 치환된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체하는 대용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발 크기가 같다는 이유로 우연히 바꿔 신게 된 신발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뒷부분에 수록된 '불연속선' 같은 작품을 통해 삶에서 반짝이는 긍정과 희망의 순간을 말한다. 극도의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여자가 직전에 비행기에 실었던 짐가방이 한 사진작가의 것과 뒤바뀌는 바람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이야기다.
현대인의 고독한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작가 특유의 예리한 시선과 이를 투영한 정제된 문장들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을 만하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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