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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훼손된 의병장 권형원…어장 침탈 日 어부들 처단하기도

강원서 10개월간 전투 지휘…고성읍 5시간 머물며 일본군 분견대에 타격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일제에 의해 총살된 것도 모자라 목이 잘리고 머리는 가마솥에 삶아져 두개골만 일본으로 반출된 의병장은 권형원(權亨源·1854∼1907)은 강원도 고성군 서면 송탄리 출신이다.

휴전선 북방, 현재 고성군 순학리 금강산 진입로 부근에서 성장한 권형원은 1896년 민용호가 이끌던 강릉의병 예하의 고성 유진장(留陣將)으로 활약했다.

시신 훼손된 의병장 권형원…어장 침탈 日 어부들 처단하기도 - 2

향반 출신이던 그는 당시 동해 연안 어장을 침탈하던 일본인 어부들을 잡아 처단했을 뿐 아니라, 일본 상인들의 상권 침탈행위를 단죄하는 등 고성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1907년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확산하자, 다시 칼을 잡은 권형원은 53세 나이에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일원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수개월간 10여 차례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그가 치른 최후의 항전은 1907년 10월 20일 고성전투였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소장자료인 당시 한국주차군 참모장이 육군 차관에게 보고한 문건에 따르면, 이날 새벽 권형원이 지휘한 의병 350명이 고성읍을 습격, 5시간 동안 머물며 일본군 분견대(보병51연대 9중대 소속)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뒤 뒤 철수했다.

앙갚음에 나선 일본군은 의병활동을 지원하던 인근 마을을 돌며 지도자 12명을 끌어다가 총살했다.

송탄리 자택에 은신해있던 권형원도 체포돼 고성읍을 가로 지르는 남강(南江)의 소나무숲으로 끌려가 사살됐고 집은 불태워졌다.

그의 시신은 이후 더 참혹하게 다뤄졌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일본군은 권형원의 목을 잘라 수비대 본부가 있던 고성 북쪽 장전항으로 가져가 가마솥에 넣고 삶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두개골은 일본으로 밀반출돼 한때 어느 신사(神社)에서 '강원도 권형원'의 이름으로 그의 종친(14촌)에 의해 발견됐으나 목격자도 타계했고 그의 신체 일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사후 머리없이 고성 벌판에 매장됐다.

일제 강점기에 송탄보통학교가 들어서 묘역이 운동장으로 편입되자 1936년께야 선산으로 이장됐다.

이장과정을 지켜본 손자며느리 심소청의 증언에 따르면 자손들은 목이 잘린 유골에 종이로 머리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고깔을 씌워 안장했다.

선친의 기막힌 수난을 지켜본 장남 권병섭(權秉燮)은 복수의 한을 품은 채 민긍호 의병부대에 들어가 항일전을 펼쳤고, 1908년 민긍호가 순국한 뒤에는 서울, 해주, 안성 등지를 전전하며 김진권, 권오섭 등 가명으로 항일투쟁을 벌였다.

yyk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27 11:1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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