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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숙의 시각> 대통령과 시민의 위안, 도심 계곡

(서울=연합뉴스) 서울 심장부에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에는 각각 백사실, 수성동이라는 계곡이 있다. 도심 계곡치고는 규모가 크고 경관이 수려하다. 백사실 계곡은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수량이 불어나는 여름에는 제법 높은 폭포가 만들어진다. '백사실'이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명신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으로 추정되는 집 터가 계곡 옆에 있는 데서 유래했다. 이 일대는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다워 '백석동천'이라고 불렸다. '동천'(洞天)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풍광 좋은 곳을 뜻한다.

계곡에는 개구리, 가재와 1급수에만 사는 도롱뇽이 서식해 환경 지킴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세검정이 있는 홍제천으로 빠지는 백사실 계곡은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 입소문을 탄 결과, 적지 않은 등산객과 나들이객이 방문한다. 근처 주민 사이에는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 경관에 탄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5·16을 거사하고 나서 참모들과 백사실 계곡에서 막걸리를 통음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 당했을 때 답답함을 덜려고 산행 왔다가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라며 놀라워했다고 전해진다.

백사실 계곡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2㎞ 떨어진 인왕산 기슭에는 수성동 계곡이 있다. 행정구역 이름은 종로구 옥인동이다. 1971년 계곡 일대에 옥인시범아파트가 지어졌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인왕산 둘레길을 가다 보면 숲 가운데 낡은 아파트 건물이 덩그렇게 서 있는 게 보였는데 2010년 철거됐고, 수성동 계곡이 시민 휴식 공간으로 복원됐다. 이 계곡에서 올라다 보이는 장중한 치마바위는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빼어난 경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조선 금수강산을 붓끝으로 완성했다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물소리가 커 수성(水聲)이라고 불린 이 계곡을 '장동팔경첩'에 그렸다. '장동'은 종로구 통의동, 효자동, 청운동 일대를 뜻하는 옛 지명이다. 이 그림에는 길이 1.5m가량의 돌다리 '기린교'가 그려져 있다. 통돌로 된 이 돌다리는 시범아파트 철거 때 발견돼, 그림이 그려진 지 300년이 지난 현재 원위치에 다시 걸렸다. 한양 도성 내 남아 있는 통돌 다리로는 가장 길다.

<현경숙의 시각> 대통령과 시민의 위안, 도심 계곡 - 2

대낮처럼 훤한 하지 저녁에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계곡 옆 터에서 배드민턴과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열댓 어린이들이 무리 지어 빽빽 소리를 질러대며 왁자지껄하게 뛰노는 광경을 보기는 오랜만이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을 누비던 옛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주변에 서민 연립주택이 많은 것으로 봐서 젊은 부부가 적잖을 것 같다.

계곡 안내판은 '그림 속 풍경, 풍경 속 그림'이라는 제목 아래 명화의 소재가 됐던 일대의 명승지들을 소개해 놓았다. 인왕산, 창의문, 세검정, 백운동(자하문 터널 위) 등이다. 역시 겸재 작품인 인왕제색도는 청와대 근처인 궁정동, 총리 공관이 있는 삼청동 고지대에서 바라보이는 인왕산을 그렸다.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을 그린 이 그림은 단순하고 과감한 구도 속에, 두려움마저 일으키는 인왕의 바위들을 원경 가득 배치해 꿈틀거리는 호랑이의 힘을 느끼게 한다.

<현경숙의 시각> 대통령과 시민의 위안, 도심 계곡 - 3
<현경숙의 시각> 대통령과 시민의 위안, 도심 계곡 - 4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로 아침저녁 출퇴근할 때 청와대 뒤로 우뚝 솟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우람한 바위들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때 세종로에 지어졌던 중앙청사가 1996년 철거되고 나서 드러난 낮은 스카이라인과 탁 트인 시야는 빌딩 숲에 갇힌 시민들에게 한줄기 청량감을 선사한다. 지난달 어느 맑은 저녁, 인왕산 뒤로 떨어지는 노을 속에, 석가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광화문 일대에 내걸린 수천 개의 화려한 연등 사이로 고운 한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떼 지어 다니면서 자아낸 멋과 정취는 자연, 도시, 역사, 사람이 어우러진 데서 나온 것이었다.

일상으로 밟고 다니는 길이 수십 년, 수백 년 전 선인들이 갔던 길이라는 게 퇴근길의 처진 어깨를 조금 가볍게 한다. 문화재 전문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서울 사대문 안은 어디를 파든 유물이 쏟아진다. 유적 발견 신고 의무가 있는 건설업자들이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종로 피맛골 일대가 지난 3~4년 동안 대거 재개발됐다. 조선 시대 골목길이었던 피맛골의 이름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대작들의 말을 피해 다녔다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피맛골에 새로 들어선 늘씬한 빌딩들 1층이나 주변 땅에는 발굴된 유물과 유적을 정돈한 다음 유리 덮개를 씌우고, 시민들이 그 위를 지나다니면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600년 도읍지에 사람의 일상이 역사로 묻혀 있다. (논설위원)

ks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28 07:2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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