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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저항적 자살' 어떻게 늘었다 사라졌나

"5·18로 시작해 6월항쟁 때 본격화…한총련 쇠퇴로 소멸"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우리나라 학생운동에서 대학생의 '저항적 자살'을 통시적으로 조사한 논문이 나왔다.

2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최근 사업회가 펴낸 '기억과 전망' 여름호(통권 34호)에 실은 '한국 학생운동에서 대학생의 저항적 자살에 관한 연구'에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에 등재된 자살자 30명을 분석했다.

임 박사는 이들의 저항적 자살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등을 기준으로 유신시기(1975), 1기(1981∼1985), 2기(1986∼1988), 3기(1988∼1989), 4기(1990∼1993), 5기(1995∼1997)기로 나눠 분석했다.

유일하게 유신시기 목숨을 끊은 김상진은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고발하려 한다고 자살의 목적을 밝혔지만, 직접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뜻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전두환 정권의 5·18 학살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태훈과 송광영이 속한 1기에서 정권 타도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학생운동 '저항적 자살' 어떻게 늘었다 사라졌나 - 2

무려 9명이 목숨을 끊은 2기 때는 반미반제가 학생운동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면서 대학생 자살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와 서울대 총학생회 주도로 전방입소훈련 거부투쟁이 시작된 1986년 4월 28일 김세진·이재호가, 5월 20∼21일 이동수·박혜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1988년 4월까지 5명이 뒤를 따랐다.

이 시기에는 지배세력을 타도하자는 직접적인 구호보다는 다른 학생에게 투쟁 동참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나왔다.

학생운동 '저항적 자살' 어떻게 늘었다 사라졌나 - 3

3기는 통일운동이 고조되면서 남북공동올림픽 개최와 반미를 외친 자살자가 늘어났다. 또 5·18을 규탄하기 위한 자살도 함께 발생한 시기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의 동생 박래전은 1988년 6월 4일 5·18 학살을 일으킨 군사정권 처단을 촉구하며 분신했다.

1991년 강경대 열사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 4기 때는 대학생은 물론 사회운동가·노동자·고교생 등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고교생만 해도 김철수·정성묵·김수경·심광보 등 4명이나 됐다.

김기설 당시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의 자살과 관련해 강기훈 당시 단국대생이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은 것도 이 당시다.

시인 김지하는 1991년 자살자들을 비판하며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실어 논란을 낳기도 했다.

5기에서는 김일성 사망과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 등으로 신공안정국이 조성된 가운데 14개월간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1∼5기 자살자를 대학별로 보면 서울대가 6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원대 5명, 부산대·서울교대·광주교대 각 2명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권 12명, 경기권 8명, 충청권 1명, 영남권 4명, 호남권 5명이었다.

자살 방법은 66.7%가 분신이었다. 자살 장소는 76.7%가 학교였다. 자살자는 '자주파'로 불리는 민족해방(NL)계가 다수였다.

임 박사는 논문에서 "대학생 자살이 5·18 이후 시작해, 1987년 6월 항쟁 이후 본격화했으며,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쇠퇴 이후 소멸해갔다"고 분석했다.

comm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27 07:1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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