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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명·청대 황릉과 완전히 달라…송대 전통 계승"

왕치헝 중국 톈진대 교수 인터뷰…"의궤는 매우 중요한 기록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왕릉과 동시대의 명·청대 황릉은 완전히 달라서 서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조선에서는 왕이 승하한 뒤에 능을 만들었지만, 명나라에서는 황제가 즉위하면 바로 무덤 건설을 시작했어요. 조선왕릉은 오히려 송대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중국 황릉 전문가인 왕치헝(王其亨) 중국 톈진대 교수는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왕릉과 명·청대 황릉은 선조에 대한 효심의 발현이라는 본질은 같지만, 조경이나 구조는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한국고대사탐구학회와 함께 개최한 학술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왕 교수는 한국과 중국에 있는 동시대의 무덤 양식이 달라진 원인을 중국 역사에서 찾았다.

왕 교수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는 중국의 전통을 완전히 단절시켰다"면서 "몽골의 지배를 끝낸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이전의 문화나 제도를 복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왕릉에는 능침 앞에 고무래 정(丁)자를 닮은 건물인 정자각(丁字閣)이 있는데, 이런 건물은 명과 청의 황릉에는 없다"며 "송대 기록을 보면 황릉의 귀두옥(龜頭屋)이란 건물이 정자각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왕릉에는 송의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의 무덤 양식이 비교적 잘 전승됐지만, 명대에 황릉을 조성할 때는 단절된 과거로 인해 많은 것을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선왕릉과 명대 황릉 사이에는 능의 이름을 붙이는 규칙도 상이했다. 명은 오로지 황제가 묻힌 능침에만 능호(陵號)를 부여했으나, 조선은 왕비만 매장된 무덤에도 별도의 능호를 만들어 불렀다.

게다가 명대 초기에는 순장제도가 있어서 독립적인 능호를 가진 비(妃)나 빈(嬪)의 무덤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에는 순장의 풍습이 없었다.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는 남편보다 20여년을 더 살았고, 홀로 태릉(泰陵)에 묻혔다.

또 명·청대 황릉은 특정 구역에 집중돼 있지만, 조선왕릉은 서울 주변에 흩어져 있다는 점도 다르다.

왕 교수는 조선왕릉에서 보이는 중요한 특징으로 연속성을 꼽았다. 조선은 500여년간 큰 변화 없이 문화가 이어졌고, 왕릉도 석물의 형태 같은 작은 부분을 제외하면 정체성이 잘 유지됐다.

그는 "세대별로 계속 건립해야 하는 무덤은 연속성이 강하다"면서 "조선의 모든 왕릉은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을 본보기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선왕릉의 전통이 잘 계승된 이유 중 하나는 국장을 치를 때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적은 책인 의궤(儀軌)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 교수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왕릉 특별전에서 의궤를 본 뒤 "의궤에 대해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보니 내용이 매우 자세해 놀랐다"면서 "의궤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는 조선의 의궤처럼 방대한 기록이 있지는 않다"며 "의궤를 연구하면 한국은 물론 중국의 장례 문화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무덤은 곧 부모를 섬기는 마음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추억하기 위해 만든 시각적 장치물이죠. 하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문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앞으로 양국 왕릉에 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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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27 06:5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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