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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국가의 운명은 누가 결정하는가

(서울=연합뉴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가 판도라를 열어젖혔다. 영국 국민이 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하자 세계가 뒤집혔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져 하루 3천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어느 나라도 영국 입장에서 브렉시트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부분 자국 경제에 득이 되느냐를 따져 브렉시트에 반대했다.

영국의 탈퇴는 1957년 유럽 경제공동체(EEC)가 전신인 EU 체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재정위기, 아랍 난민, 우익의 발호, 테러 등으로 몸살을 앓는 28개 EU 가맹국은 동상이몽이다. 잘사는 북부 유럽과 못사는 남부 유럽이 공존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은 냉전 종식 이후 급속하게 전개된 개방과 자유화에 제동이 걸리고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향하고 있다.

<김종현의 풍진세상> 국가의 운명은 누가 결정하는가 - 2

2천200여 년 전 한비자(韓非子)가 본 인간은 본질적으로 눈앞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였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익이나 대의는 종종 무시된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찬성파는 이민자의 유입, 과도한 EU 분담금 등으로 자신의 수입과 복지,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에 분노했다.

영국은 EU 회원국에 수출입과 투자의 40∼50%를 의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장기적으로 연방의 해체 등 정치·외교적 불투명성 외에 막대한 경제적 손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마 멸망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에서 전쟁은 일상이었다. EU 체제의 가장 큰 혜택은 평화와 관용이다.

브렉시트 논란의 근저에는 섬나라인 영국과 대륙국인 독일ㆍ프랑스의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 EU 체제는 특히 독일을 위한 꽃가마였다. 독일은 이 시스템 아래서 번영해 유럽 최강국이 됐고, 남유럽 국가들은 피폐했다.

제조업 최강인 독일은 마르크화의 강세로 고전하다 유로화의 도입으로 가격 경쟁력과 시장이 확보되면서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였다.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가 게을러서 재정위기에 봉착했다고 보는 건 너무 단순하다.

영국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어 독일의 부상을 경계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힘이 지나치게 강대해졌을 때 유럽 대륙에는 늘 문제가 생겼다. 독일과 프랑스가 EU를 주도하자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EU에 경제 주권을 빼앗기면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것도 자존심 강한 영국엔 불만이다.

브렉시트 투표는 국가의 운명을 과연 누가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큰 물음을 던졌다. 영국의 집권 보수당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이 중대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항상 올바른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국민은 때로 이성이 아니라 감성과 분위기에 움직인다. 선동에 현혹되기 쉽다. 히틀러를 포함한 세계의 수많은 독재자와 사악하고 무책임한 정파가 국민투표를 통해 부상했다.

그렇다고 국가의 운명을 몇몇 집권 엘리트들이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인들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2013년 총선공약으로 브렉시트 투표를 내걸었던 것은 국민의 뜻이라기보다 포퓰리즘이었다. 결국 정권을 잡았지만 이 투표는 찬반 진영 간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갈가리 찢고, 영국과 세계의 장래에 암운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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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투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는 개헌논의가 한창이다. 올해는 북한의 핵 도발로 쑥 들어갔지만, 작년엔 통일대박론이 유행했다. 내년엔 대선이 있다. 20년 전 환란 이후 가속한 빈부격차과 일자리 문제는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는 경고가 계속되고 있다. 국가가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결국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어떤 사안이든 국민투표에서는 찬반양론이 격하게 충돌할 수 있다. 통일의 경우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우세하다면 통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통일은 남쪽 국민의 수입과 복지, 일자리를 북쪽과 나누는 걸 의미한다. 흔쾌하게 부담을 감당하겠다는 국민도 있겠지만 반대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국민투표를 놓고 여론이 갈려 갈등이 증폭할 때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이견을 조율하고 국론을 결집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지금 국가의 인프라인 공항을 하나 건설하는데도 지역 싸움으로 나라가 흔들릴 지경이다.

국가의 진로를 신탁(神託)으로 결정하는 시대는 차라리 행복했는지 모른다. 신의 계시라는데 누가 딴지를 걸 것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의 뜻'이 신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탁을 움직이는 힘은 많은 경우 냉철한 지성(知性)이 아니라 오도된 정보와 아집으로 빚어진 미신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다.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리고, 설득하고, 조정하는 리더십 말이다. 나라가 흥하려면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건 진리다.

kimj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27 07: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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