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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의 동행> 한센인과 국가의 책임

<최재석의 동행> 한센인과 국가의 책임 - 2

(서울=연합뉴스) "피고가 한센인의 본질적인 요구와 천부적인 권리에 대하여 합리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아니하고 전면적인 출산금지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다. (중략) 피고가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원고들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침해한 것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2015년 7월 16일 서울중앙지법이 '강제 단종·낙태' 한센인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문 내용이다. 한센인 1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 사건의 2심 재판부가 이달 20일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특별재판을 열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 특별재판에서 한센인 원고 A 씨는 "마취도 안 했어요. 한 시간 반 정도 기계를 넣어서 하는 거 같은데 너무 고통스러워 며칠을 하혈했어요"라고 증언했다. 이에 피고 측 증인으로 나선 전직 소록도병원 의사는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잘잘못을 가리는 건 적절치 않아요. 국가로선 당시 그건 최선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재판의 쟁점 중 하나는 수술의 강제성 여부다. 당시 낙태수술을 받았던 한 소록도 주민은 언론인터뷰에서 "(낙태를)하고 싶지 않다고 우리는 말도 못 했어요. 안 그러면 소록도를 나가야 했고 그러면 먹고살 수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정부는 동의를 받고 한 수술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설령 정관수술이나 낙태수술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나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센병을 비교적 전염력이 낮은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했음에도 같은 제3종 전염병인 결핵이나 성병 등과는 달리 유독 한센병에 대해서만 강제 격리 정책을 유지했다. 이는 한센병이 외모에 변형이 생기고 이로 인해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심하기 때문으로 보일 뿐, 적어도 1960년대에는 한센병이 강제 격리 정책을 유지할 정도의 특별한 질환이 아니었다.

(2) 강제 격리 정책으로 한센인은 스스로 한센병이 전염성이 강한 질환으로서 특히 자식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인식하고, 심지어는 유전되기도 하는 질환이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나아가 격리 정책은 일반인에게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했고, 한센인들에게는 열등감과 외부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3) 피고는 1949년부터 일제강점기 때와 같이 정관수술을 조건으로 부부 동거를 허용했고, 굳이 출산을 원한다면 병원에서 퇴소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용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도 없었던 한센인들은 부부가 함께 퇴소하더라도 자립능력이 부족했고 외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 사실상 퇴소를 선택하기 힘들었으며, 따라서 임신 여성이 퇴소하지 않으려면 낙태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4) 이러한 현실에서 정관수술이나 낙태수술은 진정한 의사에 따라 동의 또는 승낙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센인들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위와 같은 조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최재석의 동행> 한센인과 국가의 책임 - 3

한센인에 대한 강제 단종·낙태수술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돼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2007년 한센인 피해 사건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구성된 국무총리 산하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부터 조사를 시작해 6천462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정부는 한센인 피해자에게 생활지원금 명목으로 월 15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피해 한센인 500여 명은 국가를 상대로 모두 5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그간 법원은 단종 수술 피해자에 3천만 원, 낙태수술 피해자에 4천만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현재 1건은 대법원이 심리 중이고 나머지 4건은 서울고법에서 재판 중이다.

지난 4월 25일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는 과거 한센인 격리 법정을 운용한 데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보고서를 통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고 환자의 인권과 존엄에 상처를 준 것을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아주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일찍이 일본 정부는 강제 격리 대상이었던 한센인들에게 보상하는 조치를 했다. 일본 국민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소록도로 강제격리했던 한국인 한센인 590명에게도 800만 엔(현재 환율로 약 8천800만 원)을 보상했다.

누구에게나 잘못이 있을 수 있다. 뒤늦게 알려진 진실 앞에 늘 후회가 남는 법이다. 우리에겐 광복 후 짧은 시간에 비약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인권이 무시된 아픈 역사가 있다. 한센인의 인권 침해도 그런 역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사과와 반성은 부끄럽지 않다. 지금 한센인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돈보다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과일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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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23 07:2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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