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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공예의 특성은 선택적 수용과 독자적 발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리 불교공예의 기원은 중국에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취사선택해 수용했어요. 정병이 한 예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정병에 은줄을 새겨넣는 은입사(銀入絲)를 했는데, 이는 중국에는 없는 독창적 기법입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19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불교공예의 특성을 선택적 수용과 독자적 발전이라고 밝혔다. 불교공예는 사리장엄구, 범종, 향로, 정병, 금강령 등을 아우른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불교공예 발전 양상을 비교하면 특징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국은 중국에서 문물이 건너오면 즉각적으로 변화시켰지만, 일본은 중국의 양식을 몇 세기 동안 그대로 유지했다"며 "범종 위쪽에 있는 고리인 용뉴만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은 쌍룡이지만, 한국은 용이 한 마리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교의식에서 사용된 도구인 운판(雲板)은 중국과 일본에 많지만 한국에는 거의 없다"면서 "범종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소리를 내는 법구(法具)인 운판을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 불교공예의 특성은 선택적 수용과 독자적 발전" - 2

최 교수는 지난해 일본에서 금강령(金剛鈴) 연구를 진행해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규정된 유물 중 상당수가 고려 작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금강령은 대승불교의 분파인 밀교(密敎)에서 사용하는 작은 법구로, 절굿공이 모양을 한 불교 도구인 '금강저'에 방울을 붙여 만든다.

일본에서는 양식적으로 뛰어난 금강령과 금강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중국 당나라나 송나라에서 온 도래품(渡來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일본에 있는 금강령 16개를 조사해 9점은 한국적인 요소가 확연히 드러나거나 한국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 교수는 "한국, 중국, 일본의 금강령은 우선 크기가 다르다"면서 "중국 금강령은 높이가 30㎝ 전후로 가장 크고, 일본 금강령은 20㎝ 내외로 가장 작다"고 말했다.

한국 금강령에 대해서는 "높이가 22∼23㎝로 손잡이의 두께가 두껍지 않고, 부조상은 코와 손 부분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 5년간 이뤄진 발굴조사의 성과가 한국 불교공예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서울 도봉서원과 양주 불곡산에서 나온 금강령, 5월 삼척 흥전리 절터에서 발굴한 통일신라시대 청동정병은 모두 기존에는 없는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도봉서원 금강령은 도상(圖像)이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작품입니다."

정병은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래했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더욱 발전했다. 흥전리 절터에서 출토된 청동정병은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형체가 매우 아름답다.

최 교수는 청동정병을 직접 본 뒤 "이 정병과 형태가 매우 비슷한 일본 나라(奈良)의 청동정병이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 공예는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특질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 문화재가 중국 유물로 소개돼 있는 것을 바로잡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확실한 근거를 대면 차츰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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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19 08:5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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