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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멘토는 1950년대 '공산주의자 사냥' 자문한 '해결사'

송고시간2016-06-18 06:35

WP "트럼프, 해결사 콘에게 '공격·반격·사과하지 않기' 전략 배워"에이즈 사망 '악덕 변호사' 콘 생전 "매카시즘보다 더 큰 명분 일 없었다"


WP "트럼프, 해결사 콘에게 '공격·반격·사과하지 않기' 전략 배워"
에이즈 사망 '악덕 변호사' 콘 생전 "매카시즘보다 더 큰 명분 일 없었다"

(워싱턴=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의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멘토'가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즉 '빨갱이 사냥'을 주도한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의 대표자문을 맡았던 로이 콘(사망)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73년 10월의 어느 날 밤 뉴욕 맨해튼 이스트사이트에 위치한 '르 클럽'을 각각 찾았다. 뉴욕 명사들이 단골로 찾는 장소였다. 27세의 부동산개발업자인 트럼프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콘에게 접근한다. 당시 46세의 콘은 '악덕 갱스터 변호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해결사'로 통했다.

트럼프는 뉴욕시에서 한 1만4천여개의 주거용 아파트 임대과정에서 "흑인을 차별한다"며 법무부에 의해 고발을 당한 처지였다. 그는 콘에게 조언을 구했고 "법정에서 싸우라"고 충고한 콘은 곧 트럼프의 변호사가 됐다. 두달 뒤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열고 "무책임하고 근거없는 법무부의 소송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며 1억 달러짜리 맞소송을 제기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13년 뒤 콘이 1986년 중범죄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뒤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이어진다.

콘은 1927년 뉴욕의 부유한 유대계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20세에 콜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 맨해튼에서 검사로 법조인의 발걸음을 뗀다. 1949년 소련 첩자로 의심받는 국무부 직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공산주의 사냥'에 발을 담그게 된다.

트럼프의 멘토는 1950년대 '공산주의자 사냥' 자문한 '해결사' - 2

이듬해 그는 '핵 간첩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주임검사가 돼 수사한다. 유대인 부부가 소련에 핵관련 기밀을 넘기는 등의 간첩활동을 공모한 혐의가 드러나 기소됐다. 이들 부부는 결국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했다.

이러한 수사 경험이 바탕이 돼 그는 1953년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한 상원 정부활동위원회 대표자문 변호가가 된다. 이듬해 이 위원회의 활동이 동력을 잃으면서 콘은 워싱턴을 떠났다. 하지만 콘은 추후 자서전에서 "매카시보다 더 나은 사람, 그 일보다 더 큰 명분을 위해 일해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콘이 트럼프를 만났을 당시는 자신의 인생의 정점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비난받는 인물, 갱스터 변호사, 악의 화신 등으로 불렸지만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 마피아 보스인 앤서니 살레르노 등과 사귄 확실한 해결사였다. 그는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트럼프를 법정에서 대변하고 결혼을 조언했으며 뉴욕의 파워브로커와 부자, 사교모임을 소개했다.

트럼프는 최근 WP인터뷰에서 "로이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며 나를 좋아한다. 여러 일에서 나를 위해 멋진 일을 해줬다"며 "그는 터프한 변호사이다. 그는 정말 터프가이다"라고 말했다.

1970년대 두 사람을 수십시간 인터뷰하고 책을 낸 탐사기자인 웨인 버렛은 자신의 저서에서 "콘은 트럼프의 멘토이자 지속적인 자문관"이라며 "두 사람 모두 전투견이었다"고 전했다.

WP는 "콘은 트럼프에게 권력을 이떻게 이용하고 공격하고 반격하되 사과하지 않는 단순한 방식을 통해 두려움을 불어넣는지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래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적을 경멸하고 소수자와 여성을 모욕하며, 지지자들 사이에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전술을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도 더욱 공격적으로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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