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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것도 서러운데…' 노인 상대 만병통치약 사기 기승

송고시간2016-06-17 07:05

계란 노른자+계피+고구마 전분이 중증 질환 특효약 둔갑

치료 시기 놓쳐 숨지는 사고 생겨도 처벌은 '솜방망이'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음료나 건강식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노인 환자에게 고가로 파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기간에 여러 장소를 옮겨가며 사기극을 벌이는 이들은 계란 노른자와 계피 등으로 '노인 질환 특효약'을 만든다. 어성초와 삼백초를 달인 액체로도 판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을 속이려고 청와대와 국회 마크가 찍힌 초대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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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금전 손해뿐 아니라 심리 상처까지 받는다. 치료 시기를 놓쳐 증세가 심해지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피해 노인이 늘어나는데도 단속은 무기력하다.

범인이 잡혀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피해를 줄이려면 처벌 수위를 높이고 정책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 '한약재 섞고, 가격 10배 부풀려'…청와대 사칭까지 유형 '각양각색'

'만병통치약' 사기는 단기간에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떴다방' 수법을 주로 활용한다. 황당한 효험을 내세워 일반 음료나 건강보조식품을 특효약으로 둔갑시켜 고가에 판매하는 것도 특징이다.

계란 노른자에 계피, 고구마 전분 등을 뭉쳐 환약으로 만드는가 하면, 한약재를 섞어 넣어 재가공하기도 한다.

피해자를 속일 때는 청와대 등 국가기관을 사칭한다. 유명 스님의 특별제조법이라는 속임수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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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광고가 허무맹랑한데도 피해자들은 쉽게 속아 넘어간다. 대부분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이나 치료가 절박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경찰서가 지난달 30일 불구속입건한 김모(63)씨 등 4명도 비슷한 사례다.

이들은 계란 노른자에 한약재를 넣어 환약을 만들어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팔다가 적발됐다.

이런 수법으로 2억7천여만원을 챙겼다.

경기도에서도 지난달 31일 4만원짜리 액상 차를 당뇨와 고혈압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속여 10배가량 값을 부풀려 약 11억원을 챙긴 4명이 구속됐다.

피해자는 무려 3천700여 명에 달한다. 청와대와 국회 마크가 찍힌 초대장을 이들에게 보내 건강식품 홍보관을 보여주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이런 약을 먹고 건강이 되레 악화하기도 한다.

농업법인 대표와 한의사 등 22명이 팔다가 지난달 26일 적발된 가짜 만병통치약이 병을 키운 사례다. 이들은 어성초와 삼백초로 만든 무허가식품을 각종 암과 피부질환에 좋다고 속여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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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이 제품을 먹은 소비자들은 효과는커녕 되레 질환이 악화했다.

충북 청주에 사는 A(40·여)씨는 아토피를 앓는 생후 18개월 된 아이에게 이 제품을 먹였다가 증상이 심해져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육종암 판정을 받은 전남 해남의 B(52)씨 아버지는 이 제품을 사용했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숨졌다.

◇ 환자·노인 '불안 심리 노려'…고령화 사회 "범행 갈수록 증가 추세"

'떴다방 사건'이 사회문제로 비화해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 해도 매달 2∼3건 수준이다.

전북에서만 2014년 3건(피해자 166명), 2015년 20건(피해자 4천816명), 2016년 6월 기준 7건(피해자 1만5천266건) 등이다.

'떴다방 사건' 증가세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과 환자 등 사회적 약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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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주로 60∼80대 연령이고 난치병 환자들이다.

박주호 전북경찰청 프로파일러는 17일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범행 대상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을수록 판단력과 사고력, 분석력, 논리력이 떨어지는 탓에 허황한 광고에도 잘 속아 넘어간다고 진단했다.

건강이 좋지 못한 환자 역시 절박한 상황에 봉착하면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부연했다.

남의 말이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는 '피암시성'이 강해져 피해가 커진다는 지적도 있다.

양종철 전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피암시성은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강하다. 이성적 판단을 해도 질병이나 절망 상황에 몰리면 피암시성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권위가 있거나 호의적인 사람의 말이나 의견을 잘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중증 환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 범죄를 막으려면 사회 전반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떴다방 사건'은 대부분 '식품위생법'(허위광고) 위반에 해당해 처벌 수위가 낮은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최고 10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 징역형은 매우 드물다.

김효진 전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떴다방 피의자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는다"며 "범죄 수익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탓에 재범률이 높다.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심리학전문가들은 노인이나 환자에게 불안 심리를 다스릴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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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프로파일러는 "피해자 상담을 해보면 도심보다 농촌 노인이 많다. 소일거리가 없거나 가족과 떨어져 외로움을 느껴 친밀하게 다가오는 검은 손에 쉽게 속는다"며 "근본대책을 세우려면 농촌에 여가 시설을 확충하고, 노인복지센터 등 전문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종철 교수도 "암 환자나 중증 환자에게 치료와 더불어 심리치료도 필요하다"며 "암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부분이 취약하고, 절망감을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지를 연구하는 정신종양학을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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