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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열전> ⑮ 타고난 비밀경찰, 펠릭스 제르진스키(上)

송고시간2016-06-17 07:28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라는 긴 이름의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되기 3개월여 전인 1991년 9월 초 성난 모스크바 시민들은 루뱐카 거리의 거대한 철제 상징물을 끌어내렸다.

악명 높은 비밀경찰(KGB) 본부 앞에 세워진 무게 15t의 '철의 펠릭스' 동상은 33년 만에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소련 비밀경찰의 창설자이기도 한 펠릭스 예드문도비치 제르진스키(1877∼1926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동상의 추락은 소련 붕괴의 예고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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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직전까지 정식요원 수 70만여 명과 연간 예산 22조700억 원을 가진 KGB는 "국가 내 국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 질풍노도의 성장 과정…체포와 투옥으로 점철된 혁명 활동

"섬세함과 겸손함이 돋보였다…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학창 시절 동기면서도 전쟁(러시아-폴란드 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눈 폴란드군 최고사령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원수가 제르진스키에 대해 한 평가다.

러시아 혁명의 격랑기와 소련 정권 초창기 무자비한 '적색 테러'를 동원한 정권 유지의 첨병으로 떠오른 제르진스키는 유년기 때만 하더라도 피우수트스키 원수의 평가처럼 섬세하고 겸손한 소년이었다.

폴란드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제르진스키는 지식인인 부친의 권유에 따라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중등학교(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불과 2개월 앞두고 혁명 활동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퇴학 됐다. 18살 때였다. 퇴학 직후인 1895년 그는 주저함이 없이 공산주의 혁명단체인 리투아니아혁명당에 가입해 제화공 등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지하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비밀경찰(오흐라나)에 체포돼 두 차례나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올랐다.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광부를 일하던 제르진스키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독일 베를린으로 은신처를 옮겼다. 베를린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등 사회주의 혁명 동지들을 만났다.

이후 그는 약혼자인 줄리아 골드만이 요양 중인 스위스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스위스에 간지 불과 1년 뒤에 발생한 1905년 러시아 혁명에 뛰어들었으나 실패로 끝나자 다시 당국에 체포됐다. 그러나 별다른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이내 석방됐다.

석방과 함께 제르진스키는 폴란드에서 다시 사회주의 혁명에 뛰어들었다. 이 와중에 그는 같은 조직원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아내의 체포와 투옥으로 제르진스키는 수배 중에도 혼자 어린 아들을 키우는 부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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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능란한 변신에도 비밀경찰의 체포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1912년 말 제르진스키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아파트에서 체포됐다. 세 번째 체포였다. 체포 직후 폴란드 내 교도소에 투옥됐으나 이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러시아로 옮겨 수형 생활을 했다.

모두 4년 6개월여간의 투옥 생활 기간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이 바람에 턱과 입 모양이 이상해지고, 다리는 수시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젊음과 불굴의 의지로 육체적 시련을 극복해나갔다.

◇ 볼셰비키로의 변신과 평생 멘토 레닌과의 만남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을 때 제르진스키는 모스크바 부티르카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혁명과 함께 석방된 그가 당면 목표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폴란드 난민들을 규합해 폴란드에서 혁명운동을 일으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희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쪽에 운명을 맡겼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혁명에 전념하는 볼셰비키들의 헌신에 자극받은 제르진스키는 전쟁 무조건 중지, 임시정부에 대한 반대, 노동자ㆍ병사 등으로 구성된 소비에트(대표자 회의)로의 권력 이양 등을 요구한 레닌의 4월 테제를 지지했다.

이에 따라 제르진스키는 귀국 대신 러시아 체류를 선택했다. 그는 제6차 전당대회에서 볼셰비키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지도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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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인 페트로그라드로 활동무대를 옮긴 제르진스키는 레닌의 지도 하에 볼셰비키들이 주도해 정권을 장악한 10월 혁명 과정에서 군사혁명위원회 간부로 맹활약했다.

10월 혁명 과정에서 제르진스키는 평생 멘토인 레닌과 만났다. 두 사람은 이내 의기투합했다. 마른 체구에 턱수염을 한 제르진스키가 레닌의 환심을 사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잔혹성, 혁명의 대의를 향한 냉정한 헌신, 명석한 두뇌, 조직을 무리 없이 이끄는 리더십 등이 바로 그런 특징이었다. 제르진스키는 이런 장점이 고려돼 볼셰비키 본부인 스몰니 학원 경비 책임자로 임명됐다.

스몰니 학원 경비 책임자 임명은 그가 볼셰비키 정권의 창과 방패 역할을 하는 비밀경찰에 첫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s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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