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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의 동행> "사장님, 나빠요"

송고시간2016-06-17 08:31

<최재석의 동행> "사장님, 나빠요" - 2

(서울=연합뉴스) 2000년대 초반 KBS2의 예능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어눌한 한국어를 흉내 낸 코너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외국인노동자 '블랑카'로 분한 개그맨 정철규 씨의 "사장님, 나빠요"라는 대사는 당시 꽤 유행했다. 블랑카 코너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잘 그렸다는 점에서 공감이 컸다.

10여 년이 지나 이 인기 개그 코너를 다시 떠오르게 한 일이 있었다. 경남 창녕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등 외국인노동자 4명이 이달 9일 건축업자로부터 밀린 임금 440만 원을 모두 동전으로 받았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들을 고용했던 건축업자는 자루에 담아온 100원짜리 동전 1만7천505개와 500원짜리 동전 5천297개를 컨테이너 사무실 바닥에 쏟아 뒤섞이도록 한 뒤 '가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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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 4명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 건설현장에서 급여를 주급으로 받기로 하고 일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임금을 받지 못하자 현장에 출근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건축업자가 밀린 돈을 동전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동전을 받은 노동자들은 합숙소인 원룸에서 밤새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로 나눴고, 다음날 단골 슈퍼마켓 주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후 슈퍼마켓 직원과 함께 동전을 차에 싣고 농협과 은행 등을 찾았으나 '동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환전을 거절당했다. 창원시에 있는 한국은행 경남본부를 찾아가서야 겨우 지폐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하니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모멸감이 어느 정도였겠는가.

요즘 외국인노동자는 전국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2015년 10월 통계청의 '외국인 고용조사' 발표에 따르면 그해 5월 기준으로 외국인 국내 취업자가 93만8천여 명이다. 연평균 10%의 증가세를 고려하면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민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외국인노동자가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는 게 이주노동자권익옹호단체들의 설명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인 안대환(56) 목사가 지난달 말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우리 산업 현장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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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지금 청년들의 바로 윗세대가 손가락이 잘려가며 하던 일을 이제 파키스탄이나 몽골의 노동자들이 대신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돼 자동차나 휴대전화 제조업이 주력이라 해도 부품을 만드는 절삭가공이나 사출금형 등의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선반이나 밀링머신, 프레스 등의 위험한 기계는 다루려고 하지도 않지요."

지금은 바야흐로 '외국인 200만 명 시대'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94만3천여 명이다. 2000년 49만 명이었던 외국인이 불과 15년 만에 4배로 늘어났다. '단일 민족'을 고집하던 한국이 여러 나라 출신 외국인과 함께 사는 '글로벌 국가'로 변모한 것이다. 외국인과 이웃하는 광경이 더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주민을 바라보는 인식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10월 전국의 성인 4천 명과 청소년 3천640명을 대상으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31.8%였다. 스웨덴(3.5%), 호주(10.6%), 미국(13.7%)과는 아직 큰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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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는 힘든 노동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농촌에서 지금도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발전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는 사회 구성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저출산의 늪에서 오랫동안 못 벗어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판에 우리나라에서 일하겠다고 찾아온 외국인에게 멸시와 차별이 있어서 되겠는가.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다가 생김새나 피부색이 우리와 다른 그들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왠지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행동이나 눈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외면하지 말고 조용히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주자. 같은 세상을 사는 한국인의 사랑을 느낄 것이다. 사실 먹고 살게 부족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많은 사람이 외국으로 건너가 온갖 설움을 견디며 '노동자' 생활을 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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