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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6·15공동선언 16주년…남북관계 '올스톱'

北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남북 교류·대화 단절
6·15선언 남북공동행사는 2008년 개최 이후 8년째 불발
지난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국민인사를 하고 있는 故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국민인사를 하고 있는 故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오는 15일이면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 화해·협력의 시대'를 선포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된 지 16년이 된다.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은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과 대남 군사적 도발로 남북관계는 후퇴했고, 급기야 올해 들어 북한이 감행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남북 교류와 협력은 전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폐쇄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폐쇄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6·15 공동선언은 ▲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 남측 연합제와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조속 해결 ▲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교류·협력 활성화 ▲ 당국 간 대화 개최 등 5개항으로 구성됐다.

공동선언 채택 이후 적십자 회담과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 등 각종 대화채널이 가동됐고,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인도적 지원, 개성공단 조성 및 금강산관광, 철도·도로 연결 등 각종 교류·협력 사업이 활발히 진행됐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으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를 비롯해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고비 때마다 터진 북핵 문제는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선언을 발표했지만, 이듬해인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선(先) 핵 폐기' 원칙을 내세우며 이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대폭 수정하기에 이른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故노무현 대통령(왼쪽)과 故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선언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2007년 10월 평양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故노무현 대통령(왼쪽)과 故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선언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가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없다는 취지의 '비핵·개방·3000'을 제시하자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사건(3월)과 연평도 포격 도발(11월)을 감행했다.

천안함 피격사건에 책임을 물어 당시 정부가 취한 5·24 대북제재 조치로 남북 교류·협력은 크게 후퇴했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는 다소 유연한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앞세워 '드레스덴 선언'과 '통일 대박론' 등의 구상을 내놓았지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피격당한 천안함 [연합뉴스 자료사진]
피격당한 천안함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그해 4월에는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철수 조처를 해 남북관계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남북대화를 통해 2013년 9월 개성공단은 재가동됐지만, 지난해 8월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과 이어진 '8·25 합의' 등 남북관계는 굴곡을 겪었다.

급기야는 올해 초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자 남북 간의 교류·협력은 완전히 중단됐다.

우리 정부는 2월 10일 대북제재 차원에서 개성공단 가동의 전면 중단을 발표했고, 북한은 다음 날 개성공단 폐쇄와 공단 내 남측 인원 추방으로 맞대응했다.

지난 2월 10일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발표하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월 10일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발표하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꼽히던 개성공단이 재가동을 위한 남북대화의 여지도 없어 문을 닫은 셈이다.

이후 3월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초강력 대북제재 결의와 미국, 일본, EU 등의 양자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욱 강경해졌다.

남북대화는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으면 불가하다는 게 현재 정부의 입장이다.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없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민간 차원의 6·15공동선언 남북공동행사는 올해도 불허됐다. 6·15 남북공동행사는 2008년 금강산에서 개최된 이후 8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더라도 인도적 차원의 남북 민간교류는 허용하고, 군사적 충돌 등에 대비한 최소한의 남북 대화채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3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정부가) 대북 압박은 하더라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또한 "지금은 남북 대화통로가 완전히 봉쇄돼 있는데 이럴 경우 남북 간 돌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있을 때 대처하기 어렵다"며 "최소한의 남북 대화채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hoj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13 06: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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