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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항쟁 29돌…86그룹 전면 재부상하며 시험대 올라

우상호 "더 큰 책임감으로 민생문제 해결…희생동지들에 보답"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기폭제가 되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획을 그은 '6·10 민주항쟁'이 10일 29돌을 맞았다.

당시 재야 정치세력 중심의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와 함께 항쟁을 주도했던 한 축이었던 학생운동권 중심의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은 급격한 부침을 겪어오다 4·13 총선을 거치며 화려하게 부활, 다시 전면에 섰다.

국본에 뿌리를 둔 인사 가운데 일부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일선에서 물러난 반면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6·10 세대'로 불리는 86 그룹은 배타적 강경주의로 대변되는 '운동권 정치'라는 딱지를 안은 채 4·13 총선에서 다시 한번 민심의 심판대에 올랐으나 20명 가량이 대거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86그룹을 대표하는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 회장단 출신 중 오영식 임종석 전의원 등은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우상호 이인영 의원은 3선 고지에 올랐다.

이밖에 김태년 박완주 박홍근 기동민 김영진 오영훈 위성곤 최인호 의원 등이 전대협 간부 출신이고, 86그룹의 리더격인 송영길 김영춘 의원 등도 이번에 원내에 재진입했다. 유은혜 서영교 김현권 의원, 기동민 원내대변인 등도 86 운동권 출신이다.

특히 6·10 항쟁 하루 전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은 연세대 집회를 주도했던 우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 리더 반열에 오르면서 86 그룹이 새로운 시험대에 서게 됐다.

6·10 항쟁 29돌…86그룹 전면 재부상하며 시험대 올라 - 2

86그룹은 16∼17대 국회부터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제도권에 진출한 뒤 승승장구했으나 주류에 영합하며 시류에 편승했다는 지적 속에 한때 '하청정치'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우 원내대표가 원내 수장에 오른 뒤 탈이념·민생을 앞세워 유연한 행보에 나서는 것도 변화를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우 원내대표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29년이 지난 오늘 민주주의가 많이 진행됐지만 국민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사회적 갈등은 더 깊어진 대한민국을 보면서 참 착잡하다"며 "특히 정치권에 와있는 6월항쟁 세대들이 더 큰 책임감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희생된 동지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7인의 국본 상임공동대표단 멤버로 활동하며 6월 항쟁의 버팀목이 됐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됐다.

부산 국본 상임집행위원이었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13일 네팔 히말라야로 떠나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국본 상황실장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는 공천에서 컷오프된 뒤 무소속으로 출마, 7선 의원으로 생환해 복당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이 전 총리는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뉴욕 회동' 불발로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인권변호사로서 6월항쟁에 참여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구의역 사고' 수습으로 최근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민추협 멤버였던 김무성 전 대표가 총선 패배 후 '자숙모드' 속에 재개를 모색하고 있고, 역시 민추협에서 활동했던 서청원 의원은 친박계의 좌장으로서 20대 국회에서 8선 고지에 오른 뒤 국회의장직을 희망했으나 도중에 포기, 여야 원구성 협상 타결의 물꼬를 텄다.

친이계 중진이었던 이재오 전 의원은 낙선했다.

lis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10 16:2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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