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낮에는 농기구 저녁엔 악기'…18년째 현악기 깎는 박경호씨

마을 이장 등 5명 악기 짊어지고 가 오스트리아서 전시회

(부안=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나무 냄새와 현악기의 달콤한 소리에 미쳐 살았더니 벌써 이만치나 달려왔네요."

전북 부안군 동진면에서 황토방을 짓고 악기를 깎는 현악기장 박경호(46)씨는 국내에 둘도 없는 '악기장이'다.

'낮에는 농기구 저녁엔 악기'…18년째 현악기 깎는 박경호씨 - 2

사실 악기를 깎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국내에 많지만, 칠하고 말리기를 수년 동안 반복해 겨우 악기 하나 완성하는 일을 업으로 삼진 않는다.

여간 배고픈 일이 아닌 탓에 누구도 현악기장을 자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굽비오 현악기제작학교를 졸업한 박씨의 동기들도 꽤 있지만, 악기를 수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골몰한다.

2007년 서울 작업실을 정리하고 홀어머니가 있던 부안으로 내려온 것도 실은 나무 살 돈조차 부족했던 때문이다.

낙향한 박씨는 집 주변 땅에 콩 농사, 고추농사를 지었고 해가 저물면 두 평 남짓한 2층 작업실로 올라가 쉼 없이 나무를 깎았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도 새로운 모양의 악기를 만들고 새로운 소리를 찾는 일은 그에게 매력적이었다.

박씨의 작품에는 독특한 모양만큼이나 별, 돌탑, 달, 노동자의 노래, 한반도 등 특별한 이름이 붙었다.

'낮에는 농기구 저녁엔 악기'…18년째 현악기 깎는 박경호씨 - 3

박씨는 "악기 제작자는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 악기를 넘겨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배고프지 않다"며 "하지만 많은 연주자는 자신만의 악기가 아닌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을 찾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박씨 작품의 진가를 알아봐 준 헬프리트 피스터 카린시아 국립음악원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여느 연주자와 달랐다. 직접 박씨의 집을 찾아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10여개 악기의 현을 일일이 문질러보고서 전시회를 제안했다.

'낮에는 농기구 저녁엔 악기'…18년째 현악기 깎는 박경호씨 - 4

풍성하고도 깊은 소리에 감명받은 교수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박씨에게 정식 초청장을 보냈다.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현악기 11대를 운반할 경비와 체류비가 발목을 잡았다. 더군다나 규정상 한 사람당 악기 2대밖에 가져갈 수 없었다.

고민에 빠진 박씨를 위해 5명이 뭉쳤다. 동네 이장, 작가, 한의사, 시인, 목수 등 악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악기원정대'가 꾸려졌다.

이들은 박씨에게 수제 악기의 선율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인정받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소중한 조력자들이다.

모두 가정과 생업이 있지만, 박씨의 능력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이기에 두말없이 발 벗고 나섰다.

악기원정대는 지난달 17일부터 닷새간 열린 전시회 일정에 맞춰 오스트리아로 날아갔다.

'낮에는 농기구 저녁엔 악기'…18년째 현악기 깎는 박경호씨 - 5

국립음악원 전시장에 진열한 박씨의 악기를 보고 파란 눈의 학생들은 주저 없이 악기를 들어 활을 움직였다.

전시회 둘째 날에 연주회를 연 박씨는 그의 악기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지는 감동을 맛봤다.

2014년 서울숲에서 열렸던 전시회 이후 두 번째다.

전시회를 마친 박씨는 "대중들과 모여 서로 소리를 나누고 싶은 욕심이 있는 악기 제작자에게 전시회는 큰 행운"이라며 "소리와 선율을 사랑하는 모든 연주자에게 악기를 기꺼이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작업실에서 손으로 깎고 다듬어 만든 현악기 40여 점의 특징과 설명, 제작 일화 등이 담긴 도록을 출간했다.

박씨는 현과 베이스 바 개수를 줄인 악기나 어깨에서 무릎으로 내려 연주하는 바이올린 등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창작 악기를 만들 예정이다.

박씨는 "악기는 소리만이 아닌 저마다 남다른 사연을 품은 그릇이다"며 "연주자들이 소리의 한계가 분명한 공장제와 달리 독특한 음색을 내고 소리가 점점 발전하는 자신만의 악기를 찾아 연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do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10 07:02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