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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신문의 아버지에서 황색언론 장본인으로

송고시간2016-06-09 10:28

조지프 퓰리처 전기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언론계 최고 권위의 상인 '퓰리처상'을 제정한 조지프 퓰리처(1847∼1911)는 언론인이자 사업가·정치가였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독립을 확보한 정의의 수호자이자 황색 저널리즘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삶도 화려하면서 비극적이었다.

퓰리처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간 '퓰리처'는 '권력의 감시자는 왜 눈먼 왕이 되었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은 타고난 재능과 감각을 발판으로 민주주의의 선봉에 섰던 언론인 퓰리처가 탐욕에 젖은 독선적 권력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헝가리 출신 이방인이었던 퓰리처는 스무살 때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독일어 신문 '베스틀리헤 포스트'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다. 성실하고 끈질긴 취재, 거침없는 비판 기사로 금세 이름이 알려졌고 정치권에도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정치인이 신문 편집자로, 다시 각급 의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신문은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세인트루이스 지역 신문을 인수하며 언론사 경영을 시작한 그는 나이 서른여섯에 미국 언론 최대의 각축장이던 뉴욕에 진출한다. '뉴욕 월드'를 인수하며 친동생이 운영하던 신문사 '뉴욕 모닝 저널'의 편집국장을 몰래 스카우트했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자리를 노린 그는 언론인으로서도 여전히 철저하고 빈틈이 없었다. 따분한 기사 틀을 과감히 뜯어고치고 특권층의 악행을 폭로하는 데 힘을 쏟았다. 모호하거나 부정확한 기사는 죄악으로 여겼다.

'월드'로 이름을 바꾼 퓰리처의 신문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면서 대통령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권력이 됐다. 말년에 들어선 퓰리쳐의 오명은 여기서 시작했다.

만화 캐릭터 '노란 아이'(yellow kid)를 두고 '뉴욕 저널'과 벌인 진흙탕 싸움이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같은날 노란 아이가 두 신문에 동시에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뉴욕 저널'과의 극심한 경쟁 탓에 '월드'의 수준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다.

당시 신문들은 쿠바의 독립운동을 놓고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을 부추기는 선정적 기사들을 가득 실었다. 언론사간 경쟁이 국제정세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 사례다. 말년의 퓰리처는 신문팔이 소년의 생계를 위협한 신문사간 담합을 주도하는가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을 일삼은 괴팍한 노인이었다.

책은 퓰리처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게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과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19세기 후반 미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제임스 맥그래스 모리스 지음. 시공사. 968쪽. 4만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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