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美국무, 내주 베이징 미·중 전략대화때 비핵화압박 고삐 죌듯

(베이징=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과 리수용 부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2016.6.1 [관영 중국중앙(CC)TV 화면 캡쳐]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미국 재무부가 1일(현지시간) 처음으로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primary money laundering concern)으로 전격 지정한 것은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포석으로 보인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격인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회동 직후 이 같은 고강도 조치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이번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에는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리 부위원장을 통해 시 주석에게 "북중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고, 이에 시 주석은 "중국은 북중·우호협력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 북한과 함께 노력해 북중 관계를 수호하고 돈독히 하고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외견상 북한 핵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관계 복원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미 정부는 이처럼 북중 양국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에 적잖이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핵보유 야욕을 버리지 않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뿐 아니라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노력을 약화시켜 결국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 재무부는 이 같은 우려 속에서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이라는 전략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는 우선은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차단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옥죄려는 것이지만, 나아가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특히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크다.
미 재무부는 심층 조사를 통해 제3국의 금융기관이 북한과의 실명 또는 차명 계좌를 유지하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해당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중단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자동으로 금융거래 중단 조치를 취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아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중국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제재를 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셈이다.
재무부가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국제사회에 북한과의 금융거래 차단을 공개로 촉구한 것 역시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미 정부는 현재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의 노력을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월 말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북한을 압박할 수 있도록 중국과 협력을 구축해왔다. 그렇지만, 아직 원하는 수준은 아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원유 공급을 비롯해 사실상 북한의 생명줄을 쥔 중국이 북한의 '대화 꼼수'에 응하는 대신 실질적인 설득과 압박작전 등 더욱 적극적으로 역할을 함으로써 5차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을 막고 비핵화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오는 6일부터 사흘간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8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이 같은 입장을 다시 한번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안이 미·중 전략대화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시 주석의 북한 대표단 접견과 미 재무부의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을 미·중 전략대화를 앞둔 양국의 기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북핵 위협을 지렛대로 동북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가중하는 상황에서 중국 혼자서도 북한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시 주석이 리 부위원장 일행을 접견했고, 이에 미 정부가 사실상 중국까지 겨냥한 북한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 카드를 예상보다 빨리 꺼냈다는 것이다. 실제 미 정부의 대북제재법은 입법 이후 180일이 지나기 전에 애국법 제311조에 따라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는지를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미 재무부는 이보다 훨씬 빠른 104일 만에 신속하게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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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02 04: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