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팔루자 또 불바다 되나…12년만의 '세기의 총격전' 재연 임박

탈환 뒤에도 종파간 갈등 우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라크 정부군이 국제동맹군의 폭격 지원 속에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 팔루자 중심부를 향해 본격적으로 진격하면서 전투가 격화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1일(현지시간) 정부군의 도심 진입을 막으려는 IS의 저항이 도시 외곽에서부터 매우 거세졌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이라크의 '화약고' 팔루자가 12년만에 다시 불바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팔루자 전투는 2004년 4월과 11월 2차로 나뉘는 데 팔루자 장악에 성공한 전투는 두번째다.

특히 2차 팔루자 전투는 '세기의 총격전'이라고 불릴 만큼 격렬했다.

2004년 11월7일 미군은 해병대 10개 대대와 이라크 군경 3개 대대가 작전에 투입됐고 탱크와 전투기가 동원됐다.

'유령의 분노'라는 작전명으로 선전 포고한 미군에 수니파 무장조직 알카에다를 중심으로 한 팔루자의 무장세력은 30만명에 달하는 주민을 대부분 대피시키고 전투 대원 3만명 정도로 미군에 맞섰다.

일주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미군은 강력한 화력을 앞세워 말 그대로 팔루자를 '쓸어버렸다'.

치열한 시가전 도중 건물과 주택 4만 채 가운데 절반이 완전히 파괴됐고 남은 곳 중 그나마 살 수 있는 곳은 1만채 정도였다.

주민이 미리 대피한 덕에 기록상 민간인 피해는 수백명 수준에 그쳤지만 당시 팔루자 무장조직이 수니파 부족과 연계된 탓에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했다.

미군도 2차 팔루자 전투에서 95명이 죽고 500여명이 다쳤다.

미군은 이 전투의 승리로 팔루자에 근거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를 들어내는데 성공했으나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게다가 미군의 팔루자 궤멸 작전에 합세한 시아파 중심의 이라크 군경에 대한 수니파의 증오는 더 깊어졌다. 이라크 수니파에 팔루자 전투는 새로 들어선 이라크 시아파 정권이 미군과 손잡고 수니파를 탄압한 사건으로 기억된 셈이다.

'모스크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팔루자는 수니파 원리주의 종파인 와하비즘이 이라크에 처음 뿌리 내린 곳일 만큼 수니파에겐 종교적 상징성이 크다.

알카에다는 수니파의 성지가 시아파에 정복됐다는 식으로 선동했다.

팔루자 전투와 직접 연결지을 순 없지만 이후 바그다드에서 시아파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잇따랐고 이라크 종파간 내전을 촉발한 2006년 2월 시아파 성지 알아스카리 황금돔 폭파 테러도 이런 뿌리 깊은 증오의 결과다.

IS의 모태가 당시 팔루자 전투에서 미군, 이라크군과 교전한 AQI임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들을 배태한 환경이 바로 이런 종파간 증오와 갈등 탓이어서다.

베트남 전 이후 최대 규모의 지상 전투의 결과로 알카에다에서 탈환했으나 팔루자는 2011년 다시 수니파 무장조직 손에 넘어가 IS의 배양토가 됐다.

현재 팔루자의 상황은 12년 전과는 다소 다르긴 하다.

팔루자에 진을 친 IS 조직원은 1천명 남짓으로 파악돼 2004년보다는 훨씬 적다.

그렇지만 작전 직전 민간인이 대부분 빠져나갔던 당시와는 달리 현재 팔루자엔 민간인 5만명이 남아있어 비전투원의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 시아파 민병대가 탈환 작전에 가세하면서 작전 이후 종파간 갈등을 IS가 부추겨 이라크 곳곳으로 폭력 사태가 번질 공산도 크다.

팔루자 또 불바다 되나…12년만의 '세기의 총격전' 재연 임박 - 2
팔루자 또 불바다 되나…12년만의 '세기의 총격전' 재연 임박 - 3

hsk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01 19:48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