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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들 세대에 전하는 글" 수필집 낸 김병호 울산남부소방서장

자서전 강좌 계기로 글쓰기 시작…35개 이야기 묶은 '홍시' 출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엄니는 홍시 장사를 했다. 마흔의 나이에 지아비를 잃고 육남매를 건사하는 길은 험했다. 문 나서면 길인데 길이 없었다.…장사는 다리 품값에도 미치지 못했다. 골목길에서 함지박을 내려놓고 신세타령 할 처지가 아니었다. 집에 가면 어미가 되어야 했다. 문현동, 전포동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허리가 접히고 다리가 꺾여도 어미가 되어야 했다.'(김병호 수필집 '홍시' 본문 중)

<인터뷰> "아들 세대에 전하는 글" 수필집 낸 김병호 울산남부소방서장 - 2

이달 말 퇴직을 앞둔 김병호(60) 울산 남부소방서장이 자전적 수필집 '홍시'를 펴냈다.

홍시를 팔았던 홀어머니에 대한 기억, 어머니마저 여의고 외가에서 보낸 유년 시절, 가장이면서도 항상 집을 비워야 했던 35년 소방공무원의 삶까지 김 서장 개인사가 담겼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35개의 짤막한 수필을 엮은 책은 TV에서 방영하는 근현대 시대극을 보는 것 같은 재미와 감동을 안긴다.

그 중 2편은 계간지 문학사랑의 수필부문 신인작품상으로 선정, 올 여름호에 실릴 예정이다.

김 서장은 1일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면서 "미숙한 글을 보이는 일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럽지만, 그 부끄러움을 여러분께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서장과의 일문일답.

--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2014년 울산시에서 자서전 쓰기 강좌가 열렸는데, 2개월 동안 일주일에 2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당시 일주일에 한편씩 써내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는데, 퇴직을 1년 정도 앞두고 시작했다.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조금씩 썼고, 퇴근하고도 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가서 썼다. 새벽 1시까지 남아서 쓰기도 했다. 휴일에는 글쓰기에 '올인'했다.

-- 수필집을 낸 계기는.

▲ 하나 있는 아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지금 30대 초반인 아들이 40∼50대가 될 때쯤 되면 이야기를 조리 있게 전할 자신이 없어 미리 글로 써서 책으로 낸 셈이다. 아들에게 책을 전하면서 '힘들 때가 있을 텐데 가족이 울타리다'라는 글귀를 적어서 줬다.

총 35개 이야기가 있는데, 아내와 아들 이야기는 하나씩 있다.

아들 때문에 시작한 졸필이지만, 아들 세대에게 한 번쯤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 "아들 세대에 전하는 글" 수필집 낸 김병호 울산남부소방서장 - 3

-- 어떻게 소방공무원이 됐나.

▲ 군대 시절 큰 산불을 끄다가 부대원들이 죽는 사고가 있었다. 전역 후 일하던 사진관 맞은편 다방에서 불이 났을 때 소방관들이 사람이 구하는 모습을 봤다. 이 두 경험을 계기로 1981년 소방관이 됐다. 당시 경남 울산소방서 여천소방파출소에 부임했다. 처음 화재 현장에 출동했을 때 제대로 된 공기호흡기가 없어 건물에 올라가다가 숨이 턱 막혀 다시 내려온 기억이 난다. 처음 발령받은 곳에서 퇴임하게 돼 의미가 있다.

-- 35년 소방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는데 기분은.

▲ 소방관으로 일하는 내내 전화벨 소리,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살았다. (화학공장이 많고 인구가 밀집한)남구를 담당하는 남부소방서장으로 부임하면서는 등산도 제대로 못 했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고, 사고가 나면 신속히 현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소방서장의 자리까지 왔다.

퇴임을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이 일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는 걱정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퇴임 이후 삶에 대한 기대도 있다. 3년 정도는 푹 쉬면서 전국 일주도 하고 악기도 배우는 등 세워둔 계획을 하나씩 실천하고 싶다.

-- 글쓰기도 계속 할 계획인가.

▲ 책을 내면서 과분하게도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홍시'를 내면서 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직 목에 가시가 걸린 느낌이다. 좀 더 토해 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일은 놓지 않을 생각이다.

hk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6/01 1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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