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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伊태권도 '대부' 박영길씨 "伊에 태권도 뿌리 단단"

송고시간2016-05-25 05:30

伊 태권도협회 종신 명예회장에 추대돼 "고맙고 감격스러워"

젊은시절 '나폴리의 이소룡' 별명…50년 간 제자 10만 명 길러낸 '산 증인'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제자들이 이런 일을 준비한 줄 미처 몰랐어요. 지난 50년 세월이 눈앞에 스치며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지만 모양 빠지게 제자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꾹 참았지요."

반 세기 동안 이탈리아 구석구석에 태권도 정신과 기술을 심은 박영길(75) 이탈리아태권도협회 기술위원장 겸 세계태권도연맹(WTF) 품새기술위원장이 이탈리아 태권도협회 종신 명예회장으로 추대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무리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라고 해도 자존심 강한 이탈리아인들이 동양에서 온 이방인을 명예회장, 그것도 종신 명예회장으로 추대한 것이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태권도협회는 지난 22일 열린 총회에서 연맹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회장직을 신설하고, 그 자리에 박 위원장을 종신 추대한다고 깜짝 발표를 했다.

이런 결정은 이날 총회에서 이탈리아태권도협회 신임 수장으로 선출된 안젤로 치토(51) 회장이 주도한 것. 그는 박 위원장의 오랜 제자다.

치토 회장이 7살 꼬마이던 4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에서 처음 태권도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은 긴 세월 동안 각별한 사제의 인연을 이어오며 이탈리아 태권도의 과거와 오늘을 함께 만들었다.

[단독]<인터뷰> 伊태권도 '대부' 박영길씨 "伊에 태권도 뿌리 단단" - 2

24일(현지시간) 기자와 만난 박 회장은 "오랜 세월 동안 정을 나눈 수제자가 이탈리아 태권도협회의 대표가 된 것도 뿌듯한데, 스승을 잊지 않고 큰 선물까지 안겨줘 고맙고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태권도인들이 많지만, 시간이 흐른 뒤 현지 사회에서 배척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게 일반적인 현실"이라며 "이번 일이 나름대로 태권도계에도 보람과 희망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생활 50년째인 박 회장의 삶 자체는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태권도의 '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남단 시칠리아섬부터 북부 토리노, 볼차노, 산마리노 공국에 이르기까지 등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그의 손으로 개원한 도장만 해도 수 백 곳을 헤아린다. 이탈리아에 등록된 태권도 인구 20만 명 가운데 그를 직·간접적으로 거친 인원만 10만 명에 달할 정도다.

스물 다섯 살 청년이던 그는 유학차 이탈리아에 와 먼저 자리를 잡은 사촌형 고(故) 박선재 전 이탈리아 태권도협회 회장의 권유로 경희대 상대 졸업 직후인 1967년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당시만 해도 일본식 무술만 존재했던 이탈리아에 태권도를 전파하고자 하는 소명을 품고 있던 그는 이탈리아로 오기 직전 최홍희 당시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의 집에서 잠시 기거하며 태권도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혔다.

이탈리아에 입국한 첫 해엔 지난 2월 작고한 사촌형 박선재 전 회장과 함께 로마 근교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다 이듬 해부터는 '남부 개척'의 특명을 받고 나폴리로 이주했다.

"당시만 해도 눈앞이 깜깜했죠. 말도 잘 안통하는 상태에서 마피아가 많다는 남부에서 무작정 태권도장을 열어야 했으니까요. 나폴리에 태권도장이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밥그릇을 빼앗긴다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밀라노에 있는 일본인 가라테 사범이 휘하 문하생 40명을 이끌고 죽이겠다고 쳐들어오기도 했었어요."

그에게 당시 싸움을 걸어온 일본 가라테 사범의 수제자는 신장 164㎝인 그보다 20㎝는 족히 큰 장신이었지만 그의 날렵한 날라차기 한방에 나가 떨어졌고, 이를 목격한 나머지 40여 명은 그의 앞에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이 사건이 나폴리 일대에 소문이 나면서 그는 '칸구로'(canguro·이탈리아어로 캥거루) 혹은 '나폴리의 이소룡'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그의 도장엔 초기부터 문하생들로 붐볐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요. 그 사건 이후 등록을 다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리며 순조롭게 태권도를 확산시킬 수 있었어요. 소문이 났는지 악명 높은 지역 마피아인 카모라조차 저희 도장들에는 불법 돈을 뜯으러 감히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나폴리를 거점으로 시칠리아, 풀리아, 칼라브리아 등 남부 일대에 태권도장 80개의 문을 열고 제자들을 키워낸 그는 1976년부터는 이탈리아 태권도협회 기술위원장 겸 국가대표 감독의 중책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대표팀 감독을 할 사람이 없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는 할 수 없이 제가 감독까지 병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요일도 없이 정신 없이 바쁜 날이었지만 태권도를 가르쳐달라는 곳이 있으면 보수나 거리에 무관하게 한 달음에 달려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에 힘입어 이탈리아 태권도는 빠르게 성장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헤비급에서 이탈리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그는 반 세기 만에 이탈리아에 태권도가 단단히 뿌리 내린 것에는 태권도 정신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단순히 발차기 기술만 가르쳤다면 이탈리아에서 태권도가 이처럼 성장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자들에게 기술보다는 건전한 정신과 생각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기술이 좋다고 잘난 척 하지 말고 낮은 자세로 섬기며 헌신할 것을 주문했어요. 이런 철학이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어요."

그는 "30년 전 나폴리에서 길 가던 행인들을 괴롭히던 불량소년이 태권도를 만난 뒤 달라져 지금은 나폴리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 원장이 돼 있다"고 자랑하며 "이런 제자들이 이탈리아 방방곡곡에 있어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지금도 한 달에 로마에 머무는 날이 일주일가량에 불과할 만큼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주변국으로의 태권도 보급을 위해 여전히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박 명예회장은 "아직 할일이 많이 있다"며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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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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