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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억류 735일'…케네스 배의 처절한 신앙 고백

송고시간2016-05-23 17:20

비망록 '잊지 않았다'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당신이 재판을 받아야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법을 우습게 여기지 않을 것 아닌가. 당신을 재판하지 않으면 붙잡혀도 기껏해야 추방될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로 몰려올 것이야. 그래서 당신을 본보기로 삼기로 이미 결정된 거야."

이는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로 기소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에게 북한의 검사가 한 말이다. 배 씨가 실제 북한 정권에 적대적 행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북한 사법당국에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케네스 배를 '보여주기'식으로 처벌하는 게 목적이었다.

'잊지 않았다'(두란노)는 배 씨가 735일의 북한에서의 수감 생활을 기록한 비망록이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5년 미국에 이민을 간 배 씨는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목회자이다. 2006년부터 중국에서 문화 교류 사업과 선교 활동을 하다가 2010년 북한 여행 사업을 시작했다. 오염되지 않은 북한의 자연경관을 서양인들에게 소개하고 북한의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고 기여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가 화를 불러왔다. 북한을 방문할 때는 외장 하드를 반입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철칙을 실수로 어기고 만 것이다. 외장 하드에 담긴 선교 자료는 북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반체제 내용으로 둔갑했다. 2012년 11월 3일 북한에 들어갔다 억류된 배 씨는 북한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심문당하고 기소됐다.

북한 당국은 배 씨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배 씨를 협박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할 경우 미국으로 보내주겠다며 사탕발림의 말로 회유하기도 했다. 반복된 회유와 협박에 지친 배 씨는 거짓 진술서를 쓰고 말았다.

이후 북한의 검사는 배 씨가 처한 현실에 대해 "재판 도중에 일어나는 일도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재판 이후에 당신 미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당신 아이가 이웃집의 유리창을 깬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야. 당연히 부모가 상황을 수습하겠지. 먼저 아이의 잘못을 사과한 뒤에 깨진 유리창 값을 배상해줄 것 아닌가. 바로 이것이 미국 정부로부터 기대하는 것이야."

배 씨는 북한이 미국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협상 카드이자 일종의 볼모로 전락한 셈이다.

거짓 진술서를 쓴 대가는 혹독했다. 2013년 4월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노동교화소로 보내진 최초의 미국인이 됐다.

교화소에서 이름 대신 '103번'이란 죄수 번호로 불린 그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6일 동안 농사와 바위 옮기기, 석탄 캐기 등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른바 '케네스 배 사건'은 국제적 이슈가 됐다.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미국 대통령과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그를 석방하기 위해 로버트 킹 특사를 보냈지만, 북한의 그의 방북을 거절했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을 보내 석방을 비밀리에 추진했지만,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억류 생활이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다. (중략)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었다. 나로 하여금 이 모든 시련을 이기게 해주시고 누구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란 약속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이 약속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자의 비망록은 한 선교사의 치열한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하지만 억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 깊이 의심의 구름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자신이 북한에 억류된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어깨에서 무거운 집이 떨어져 나가고 평안이 찾아왔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기도로 바뀌게 된다.

'잊지 않았다'는 폐쇄된 국가에 예기치 않게 억류된 한 남자의 억울한 이야기라기보다 한 크리스천의 처절한 자기 포기와 헌신, 인내와 소망의 기록이다.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함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울러 "하나님은 북한의 2천400만 동포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며 "이 책을 통해서 잊힌 북한 동포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함께 서서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

정성묵 옮김. 371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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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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