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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히로시마 동행하는 '일본군 학대 美노병'

송고시간2016-05-22 19:54

94세 크롤리 씨…"정신질환 진단 없었으면 산채로 묻혔을 것"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7일 일본 히로시마 방문에 동행하는 재향군인 대니얼 크롤리(94) 씨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가혹한 포로 학대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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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미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에서 태어난 크롤리 씨는 18살이던 40년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이듬해 3월 필리핀 마닐라에 첫 배치됐다.

그의 시련은 그해 12월 진주만 공습 하루 만에 일본군에 의해 부대가 공습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항공대는 초토화됐고 그는 육군 보병에 이등병으로 편입돼 바탄 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듬해 4월 에드워드 킹 장군이 항복했지만, 그는 미 해병 여단과 함께 조너선 웨인라이트 장군의 지휘 아래 전투를 이어갔다. 그러나 다음 달 조너선 장군이 공식 항복하면서 무려 4년에 걸친 지옥 같은 전쟁포로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2013년 케빈 위트코스 상원의원과 한 인터뷰에서 포로생활을 상세히 묘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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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리씨는 "처음에는 오도넬 수용소로 옮겨졌는데, 거기서 미군과 필리핀군 포로 2만2천여 명이 질병과 기아로 숨졌다"고 말했다. 그 후에는 팔라완에 있는 이른바 '노예 수용소'에서 "모자도, 신발도,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뙤약볕 아래서 활주로 공사 일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예 수용소에서 포로의 절반이 숨졌다. 만약 미국인 의사가 나에게 정신질환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다시 수용소로 돌아가 살아남은 나머지 포로들과 함께 산 채로 활주로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포로생활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으로 이송돼 지하 2천 피트(약 600m) 깊이의 구리 광산에서 노역하다, 일본이 항복한 45년 8월 14일 "자유의 해"를 맞았다.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9월 4일에서야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고 기억했다.

이듬해 4월 상병으로 전역한 그는 코네티컷 주 심스버리에서 보험판매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결혼 67주년인 2012년 부인과 사별한 그는 지금도 일본군의 포로생활을 경험한 미국 재향군인들의 단체인‘바탄·코레기도르방어미군추모회'(ADBCMS·이하 추모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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