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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협상 손잡은 미국-이란, 뜨거운 '과거사 전쟁'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핵 협상 타결로 제재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란이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복귀하면서 미국과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국교가 단절된 지 36년 만에 양국이 핵 합의라는 외교적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반목의 역사가 불거지는 모양새다.

특히 양국의 과거사 갈등은 단순히 학술적 측면에 그치지 않고 손해배상으로 번지고 있다.

양국의 '과거사 전쟁'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대법원의 판결로 촉발됐다.

미 대법원이 1983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 미 해병대 숙소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의 장본인을 사실상 이란으로 지목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 육군과 해병대 241명이 숨진 이 사건은 미국 외에서 미군을 겨냥한 단일 테러로는 최대 사상자를 냈다.

미 대법원은 미 육군과 해병대 241명이 숨진 이 공격이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소행이라고 인정하면서 2012년 제정된 '이란 위협감소 및 시리아 인권법'을 적용, 이란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웠다.

그러면서 미국 은행에 동결된 이란중앙은행의 자산 20억 달러를 손해배상금으로 써도 좋다고 판시했다.

이란 정부는 베이루트 폭탄 공격의 배후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해왔다.

이 판결이 나자 이란 역시 미국과 얽히고설킨 과거사 배상을 들고 나왔다.

이란 의회는 미국이 과거 이란에 끼친 역사적 손해를 물어야 한다는 법안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20억 달러를 미국이 반환하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회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양한 방법'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와 함께 이란도 미국이 배후에서 저지른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금전 배상을 받아내는 방법이 포함된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이란이 문제 삼은 과거사는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정권이 친미 팔레비 왕정으로 바뀌게 된 쿠데타다.

이 쿠데타의 배후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란의 조지 워싱턴'으로 불리는 모사데크 정권이 반서방 민족주의 정책을 펴면서 영국과 합작한 석유회사를 1951년 강제로 국유화하자 이를 위협으로 본 미국과 영국이 석유무역을 금지했다.

결국 2년 뒤 CIA의 지원을 받은 친왕정 군부가 모사데크 정부를 전복했다.

팔레비 왕정이 붕괴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엔 모사데크의 자주적 반서방 정책이 이란에서 재평가를 받았고 '석유 국유화의 날'이 국경일로 지정됐다.

이슬람혁명 체제인 현재 이란에선 공화정을 무너뜨린 1953년 쿠데타가 이란의 근대사 발전을 역행하는 반역사적인 사건으로 해석된다.

이란 의회는 2013년 8월 CIA 기밀문서 해제로 이런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지자 같은 법안을 의결했었다.

이란 의회는 또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지원해 이란 국민과 군인 25만명이 사망한 만큼 이에 대해서도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이란에 강력한 반서방 시아파 신정일치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과 수니파 아랍권이 후세인 정권을 일방적으로 지원했다.

핵 협상 손잡은 미국-이란, 뜨거운 '과거사 전쟁' - 2

hsk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5/19 18: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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