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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왕훈의 데자뷔> 라 마르세예즈와 님을 위한 행진곡

<추왕훈의 데자뷔> 라 마르세예즈와 님을 위한 행진곡 - 2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논설위원 = "일어나라 조국의 자식들아, 영광의 날이 왔다. 우리 눈앞에 압제의 깃발이 내걸렸다. 시골 마을에서 흉포한 적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들리는가. 적들은 너희의 아들과 아내의 목을 베려 진군해 오고 있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형성해 진군하자, 진군하자. 더러운 피로 우리의 땅을 적시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1절 가사다. 프랑스 혁명의 와중이던 1792년 4월 스트라스부르 주둔 프랑스군 장교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이 스트라스부르 시장에게서 "병사들의 사기와 애국심을 고양할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으로부터는 왕정 복고세력, 밖으로부터는 혁명에 적대적인 유럽 열강들의 가열한 공격을 받은 프랑스 혁명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다. 격정으로 충만했던 32세의 드 릴은 하룻밤 새 이 노래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제목은 '라인군(軍)을 위한 전쟁가'였으나 마르세유 출신 의용대가 이 노래를 부르며 파리에 입성한 것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면서 '마르세유 사람들'이란 뜻의 '라 마르세예즈'로 불리게 됐다. 고결한 혁명의 이상을 좇는 열정, 바야흐로 태동한 민족 정체성과 자부심, 이 모든 것을 위협하는 외세와 반동적 기운에 대한 증오가 이 노래에 오롯이 녹아 있다.

<추왕훈의 데자뷔> 라 마르세예즈와 님을 위한 행진곡 - 3

'라 마르세예즈'는 오늘날까지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자유·평등·박애'로 요약되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믿고 지지하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2차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 '릭'이 운영하는 술집에 진을 친 독일 군인들이 독일 군가를 부르며 거들먹거리자 다른 손님들이 일제히 일어나 '라 마르세예즈'를 불러 분위기를 압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라 마르세예즈'를 부른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인이었는지 모르지만 밴드를 지휘하고 선창한 '라슬로'는 체코, 술집 주인으로서 밴드가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하도록 허락한 '릭'은 미국 출신이라는 점은 그 당시에도 이 노래가 '국제적 연대'의 표상이었음을 말해준다.

'라 마르세예즈'는 최근 들어서도 전 세계에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1월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인들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테러의 현장에서든, 의회에서든, 소르본 대학에서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라 마르세예즈'를 함께 불렀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오페라에서도,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경기장에서도,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도 프랑스에 대한 연대의 뜻을 담은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졌다.

이런 '라 마르세예즈'이지만 이 노래를 둘러싼 논란과 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이 노래를 지지한 것도 아니다. '라 마르세예즈'가 만들어진 지 3년 후 집권세력이던 국민공회(Convention nationale)는 국가로 공식 채택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사생아' 나폴레옹은 제위에 오른 후 이 노래를 금지했다. 이후 프랑스가 제정과 공화정을 오가면서 노래의 운명도 엎치락뒤치락하다 1871년 이후에는 줄곧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라 마르세예즈'가 비판받는 것은 주로 호전적인 가사 때문이다. 1992년에는 당시 대통령 부인 등 저명인사들이 국가 가사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에 나서기도 했다. 이 노래에 반영된 강한 민족의식은 이미 수많은 이민자들과 그 후예들이 뒤섞여 살고 있는 현재의 프랑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유색인종 중심의 일부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들은 시합 전에 '라 마르세예즈'를 따라 부르지 않아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물론 국가를 따라부르지 않는 것을 가장 강력히 비난하는 세력은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 창당인과 같은 극우파다. 그러나 좌파는 국가나 국기가 불러올 수 있는 '국가주의'를 경계한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前) 대통령은 "프랑스 땅을 프로이센인들의 피로 물 들이자고 노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답게 국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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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에서 논란이 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라 마르세예즈'에 비하면 훨씬 더 절제된 언어를 구사한다. 재야 원로 백기완 씨의 시를 일부 인용해 소설가인 황석영 씨가 쓴 이 노래 가사에 그 자체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논란이 이는 것은 같은 구절을 두고서도 그것이 뜻하는 바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관점을 지닌 쪽에서는 '합창'으로 충분하다고 하고, 다른 편의 관점을 지닌 측은 '제창'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이런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합창'과 '제창'을 구분하는 주요 기준은 '화성을 이루면서 다른 선율로 노래 부르는지'와 '다 같이 큰 소리로 동시에 부르는지'의 차이라고 한다. 일반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개념 규정이다. '합창'이라고 이름 붙여도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따라 부르면 이름이 뭐가 됐든 그것이 '제창'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창'으로 규정됐더라도 부르기 싫은 사람은 입을 닫으면 그만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받들어 이 날을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한 취지를 생각한다면 행사 참석자들이 5·18의 정신이 담긴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계 부처의 책임자라는 이유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행사에는 참석하지만 이 노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노래를 부르고 부르지 않고는 '양심의 자유'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제창이 됐든 합창이 됐든 노래를 부를 지 여부까지 일률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다양성은 기꺼이 인정해 줘야 '열린 사회'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cwhy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5/18 07: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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