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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객 이어진 5·18 묘지…이야기로 전하는 그날의 기억들

송고시간2016-05-15 11:52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이리 와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오. 윤상원 열사와 함께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항쟁하다가 죽은 내 아들이 여기 묻혀 있소."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기를 사흘 앞둔 15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인천대학교 학생들은 묘비 옆에 걸터앉은 노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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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문재학은 광주상고 1학년이던 5·18 때 계엄군의 총탄에 죽었소. 조대부고 3학년이었던 박성룡, 동갑내기 친구 안종필도 아들과 한날한시에 희생당했소. 이들은 초등학교 동창 양창근이 22일 계엄군에게 살해당하면서 함께 도청으로 들어갔소."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 추모객들도 그날의 비극을 이야기로 전하는 문건양(82)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부회장과 그의 아들이 잠든 묘소 주변을 에워쌌다.

문 부회장은 1980년 5월 26일 저녁 아들을 설득하고자 아내와 함께 옛 전남도청을 찾아갔다.

부부는 "오늘 밤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단다. 어서 집으로 가자"고 아들의 손목을 잡아끌었지만, 아들은 "계엄군도 손들고 항복하면 안 쏜다고 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부모를 돌려보냈다.

아들과 일행은 '어린 학생들은 돌아가라'던 시민군 대변인 고(故) 윤상원 열사의 만류에도 끝까지 도청을 사수했고,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다며 문 부회장은 말했다.

문 부회장은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씨가 촬영한 아들의 참혹한 주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우리 아들처럼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5·18 희생자들을 기억해달라"며 5월 영령의 넋을 기리고자 묘역을 찾은 학생, 시민에게 호소했다.

문 부회장의 이야기를 듣던 시민추모객 박소현(46·여)씨는 "지금도 여전히 '왜?'라는 의문을 품고 산다"며 "광주에 사는 40대 이상 시민이라며 누구나 5·18을 아픔으로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대학교 정문 인근에서 살았던 박씨는 초등학생 4학년의 시선으로 5·18을 목격했다.

박씨는 "앞 동네 임신부가 계엄군에게 살해당하고, 헌혈하고 나오던 여고생을 군인이 총으로 쏴 죽인 이야기를 우리는 역사의 기록이나 언론보도가 아닌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이웃의 목소리로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젊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의 폭력에 희생당했다"며 마을 공동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수십 발의 총탄을 맞고 숨진 이웃과 집안의 벽마다 솜이불을 걸어두고 고등학생 아들을 다락방에 숨겼던 부모의 일화를 들려줬다.

박씨는 "나라를 지키던 군인이 왜 죄 없는 시민을 학살했는지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며 "5·18을 기억하는 시민으로서 매년 5월마다 이곳에 오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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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5·18 묘지에는 가족추모객뿐만 아니라 대학, 종교모임, 사회단체 등 각계 단위로 구성된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헌화, 분향을 마친 참배객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묘역 곳곳을 둘러본 뒤 잔디밭과 휴식공간에 모여앉아 5·18의 역사적 의의와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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