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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공 감독 "93주기 관동 조선인 학살 비극 방치해선 안 돼"

송고시간2016-05-15 07:00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 향해 쓴소리…관심·도움 필요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 향해 쓴소리…관심·도움 필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관동(關東·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조사가 올해도 시작되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의 또 다른 비극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관동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재일동포 오충공(吳充功·61) 감독은 15일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국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오충공 감독 "93주기 관동 조선인 학살 비극 방치해선 안 돼" - 2

오 감독은 1923년 9월 무고한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집단으로 학살당한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진상규명과 희생자 공식조사를 벌이지도 못한 채 대한민국은 8월이면 광복 71주년을 맞는다며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가 광복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오 감독은 "유족들은 억울하게 희생된 조상의 가묘(假墓) 앞에서 제를 올리며 93년간 매몰된 민족의 비극사를 오롯이 개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며 관동 조선인 학살을 유대인 대량 학살 범죄(제노사이드·genocide)에 비유했다.

오 감독은 "사죄 한마디 없이 버티는 일본 정부와 자국민의 희생에 대해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허송세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피해자와 목격자들은 하나둘 저세상으로 떠나고, '가해'와 '피해'의 양 측면을 기록하고 증언을 모으는 검증작업은 난관에 부닥쳤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3년 6월 주일본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한국인 피살자 명부가 발견돼 조사결과에 큰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상설화를 골자로 한 법개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도 못하고 위원회가 해산됐다.

명부에 실린 관동 대지진 피살자 290명 중 일부의 피해 사실만 확인한 채 희생자 신고 조사, 일본 정부에 대한 추가자료 요구, 유족 위로금과 배상금 지급 요구 등 적극적인 진상규명 없이 조사가 흐지부지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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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감독은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경으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 감독은 "일본 학자와 시민단체가 50년 동안 관동 조선인 학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 당사국인 한국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 상황을 일본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고 속상해했다.

그는 "지난 4월 14일 일본 구마모토 지진 발생 9분 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가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관동대지진 당시처럼 학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고 지적하며 "일본이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역사수정주의에서 벗어나 진실을 기록하도록 한일 상호 간 연계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 감독은 "관동 대학살 93주기를 앞두고 더는 민족의 비극을 방치해선 안 된다"며 "사건의 진상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명백하게 기록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조상의 유골을 하나라도 찾아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한국인의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는 잃어버린 민족의 역사를 되찾고 어릴 적 경험한 조선인 차별의 뿌리 깊은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시작"이라며 오는 8월 서울광장에서 민간 주도로 처음 열리는 '희생자 추도제' 때 다큐멘터리 예고편을 선보이고 올해 안에 작품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재일동포인 오 감독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기록영화로 제작한 유일한 감독으로 첫 작품 '숨겨진 손톱자국'(1983), 두 번째 작품 '불하된 조선인'(1986)에 이어 세 번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관동 조선인 학살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고발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10만5천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조작되고 일본 사회의 내부 불만이 조선인에게 향하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 등 관동 일대에서 재일동포가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당시 한국인 피살자수는 6천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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